※ 남능현 목사님은 안산동산교회 부목사를 거쳐 미국 시카고 트리니티신학교에서 공부했습니다. 1996년 반월제일교회에 2대 담임목사로 부임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재 교갱협 공동회장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교갱협 목사님들께 인사를 부탁드립니다.

우리 교갱협 목사님들께 존경을 표하며 진심으로 인사를 드립니다. 내 자신의 갱신과 우리 함께 교회를 갱신하는 일에 함께 기도하는 여러분들은 제게 ‘거울’이십니다. 교갱협 목사님들의 열정으로 인해서 저도 또한 뜨거운 가슴으로 여러분들과 함께 하도록 애를 쓰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교갱협과 함께 해오시면서 느끼신 점은 무엇인지요?

‘교회갱신협의회’는 자기 자신의 갱신과 개교회와 교단의 갱신을 이루려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애쓰신 교갱협 1세대 목사님들의 열정과 헌신이 이어져 오늘 이 자리까지 오고 있습니다. 그 모든 사실들이 나로 교갱협 일원이 되게 했습니다. 어느 목사님의 인도를 받았지만, 제가 능동적인 태도로 가입한 단체는 교갱협이 유일합니다. 교갱협 활동은 제가 시무하는 반월제일교회 밖의 활동 1순위일 뿐 아니라 곧 반월제일교회의 목회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교갱협은 저의 목회자다움을 위한 스승이며 동역자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신 선구자가 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 기도하며 그 기도를 이루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교갱협이 하나님의 불가항력적인 은혜의 통치를 받고 있으며, 주님께서 바라신 ‘그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는 herald가 되는 자긍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너희는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 하신 말씀이 가슴에 맴돕니다. 우리는 뚜렷하게 동시에 온유와 겸손으로 ‘세상에 보이는 외침’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들조차 ‘어쩌다 된 목사’들로 머물러선 안 되고, 우리의 갱신이 ‘어설픈 갱신’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갱신”의 전령이 되길 바랍니다.  

교갱협 공동회장이자 수도권강남 대표회장으로 섬기고 계신데요. 지난 2016년 11월 7일 수도권강남지역 설립예배를 드린지 3년이 지났습니다. 그간의 활동에 대해 간단히 말씀부탁드립니다.

교갱협을 순수하게 조건 없이 열심히 참여하다 보니, 제가 수도권강남 대표회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수도권강남의 임원들은 교갱협 전체의 비전과 목적에 매우 열정적이며, 모든 활동에 detail이 있는 훌륭한 목회자들입니다. 수도권강남 교갱협이 활성화되면서 지역 내의 교회들과 목회자들의 unity가 강화되고, “갱신”의 열정과 구체적 실천을 이루기 위해 함께 기도하고 연구하고 더욱 협력할 것입니다.

수도권강남 교갱협 모든 목사님들은 우리 자신을 갱신하고 지역을 갱신하고 교회, 한국교회를 갱신하고자 하는 열정을 뜨겁게 가졌습니다. 우리는 서로 함께 하여 교제하는 가운데 경험을 나누고 서로 배우고 섬기는 가운데 우리 자신의 울타리는 뛰어넘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공동체가 되길 희망합니다.

한 가지 유의하려고 하는 것은 우리 수도권강남 뿐만 아니라 각 지역의 교갱협이 지역 중심으로 강화되다가 교갱협 전체의 unity가 약해지지 않을까 하는 점입니다. 우리 임원들은 사단법인 교갱협 이사장님과 대표회장님을 중심으로 전국 교갱협이 교단 전체와 한국 교회 전체에 미쳐야할 헌신적 위상을 세우는 일에 위배되지 않도록 하면서 참여 심정이 높은 사역들을 이루기 위해 연구할 것입니다.

2019년 임원수련회를 수도권강남이 주관되어 잘 섬길 수 있도록 협력하신 모든 지교회들과 목사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 “교갱협 에스라 기도회”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두 번째 기도회가 12/2 강남교회에서 수도권강남 주최로 열리게 됩니다. 수도권강남지역 대표회장으로서 현재 준비 상황과 당부의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금번 우리 교갱협 전임원들과 회원들의 발의를 모아 김찬곤 대표회장께서 “에스라 기도회”를 선포 실행하게 된 것은 감격스런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최근 미국교회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야 하는 사명에 대한 삶을 “None, Done, and Undone”의 자세로 임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교회 그 본질적이며 절대적인 의미를 각 교회가(우리 각 개인이) 이 땅에 실현하기 위하여 더 새롭고 더 깊은 연구와 성령의 권능에 대한 초대교회 성도들 이상의 기도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매번 교갱협 자신에 대해서 부족을 느끼는 안타까움에 볼멘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여러 동료 선배들이 헌신적으로 ‘갱신’을 위해 앞장서셨다가 좌절을 겪기도 하신 것 같습니다. 저는 여기에서 열정을 느끼고 교갱협을 더 사랑하게 됩니다. 갱신은 불만족을 생산합니다. 그 불만족에 주저앉으면 우리는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목마른 사슴 시냇물을 찾아 헤매듯 하는 행동하는 불만족은 더 낳은 갱신을 이룰 것입니다.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빌 3:16). 가슴이 벅차지 않습니까? 에스라 기도회는 모든 안타까움과 기대와 혹 흩어졌던 회원들의 마음을 모아 모닥불이 되게 하는 단초가 됨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이 기도회에 모든 목회자들(담임목사님 내외분, 부교역자들 내외)가 다 함께 모여서 자신의 회복과 교회와 교단을 위해서 성령의 권능을 받자는 취지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수도권강남 교갱협에 계시는 은퇴, 원로 목사님들도 모시고 기도하려고 합니다. 이 기도회는 교갱협이 교갱협 되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함께 기도하면서 주님의 역사하심을 함께 체험하고 주님의 바라심을 따라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공동체가 될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

교갱협이 다음세대 목회자들을 위한 건강한 대안공동체로 서기 위해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주님의 질문에 대한 베드로 사도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 하신 고백은 위대했습니다. 교갱협은 그 고백대로 사역하는 삶을 보여주고 가르쳐주고 경험되게 하는 일을 선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님은 인간들이 던지는 그럴듯한 찬사가 담긴 명칭들을 모두 마다하고, 오직 베드로의 고백을 기뻐하셨습니다. 주님은 그 고백 위에 세우는 교회와 교회의 권세와 복을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8-19)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더더욱 하나님의 종(목사)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더욱 “오직 하나님께로부터”의 것들로 살아야 합니다. 혈통도 육정도 사람의 뜻도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목회자 됨에 대해 또는 목회에 대해 그럴듯하게 그리스도를 빙자한 혈통과 육정과 사람의 뜻으로 이루는 것을 배우지 않았는지요. 이 모든 것들을 깨끗이 씻어 버리고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의 목회와 교회를 배워야 합니다.

물론 우리는 이 시대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우리는 많은 주제들을 성경적 분별력으로 연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 모든 이야기들을 수용하며, 우리 교갱협은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는 주님의 질문에 정직하게 답해야 합니다. 무엇이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답하는 목회인지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름 받은 교갱협이요, 동시에 보냄을 받는 교갱협 됨에 대한 뚜렷한 고백과 간증을 이어 갈 것입니다.

물론 현실 속에서의 장애들은 언제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우리 교갱협은 담대히 모여야 합니다. 그리고 담대히 나가야 합니다. 저는 여기에서 대를 이어가는 건강한 대안을 발견합니다.

2013년 수원신학교 8대 학장을 역임하셨습니다. 취임사에서 “영성과 인성과 지성을 갖춘 믿음의 지도자를 양육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진 교회 지도자들을 배출하여 교회를 유익하게 하고 목회자들의 신뢰를 받게 하겠다”고 말씀하셨는데, 미래의 목회자들을 보시면서 어떠셨는지요? 한국교회에 소망을 품어도 될까요?

소망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수원신학교 학생들은 이 세상 어떤 것에도 연연하지 않고 주님의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들이 학업과 기도에 열중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자신을 이겨가는 모습을 봅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들을 통해서 일하신다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신학교육을 하는 학교경영 체계는 학생들에게 학비를 받아 운영하던 체계에서, 이제부터는 신학교 배후의 교단 교회들의 재정적 후원에 의해 영성과 인성과 지성을 갖추며 탁월한 소명감에 충일한 목회자를 훈련 배출하는 신학교로 탈바꿈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변화 속에서 교회는 영적 수준이 탁월한 목회자 후보생을 추천하게 되고, 신학교는 교회로부터 위탁받은 인재들을 총체적인 면에서 훌륭한 목회자들로 훈련하여 교회로 보내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2016년 장로섬김수련회 폐회예배에서 예배당 건축 후에 전환기를 맞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몇 년 전 라디오 방송에서 성도분들이 교회가 너무 좋아서 먼 거리에서도 출석하고 있다고 말한 기억이 나는데요. 반월제일교회 자랑을 부탁드립니다.

제가 반월제일교회의 담임목사로 청빙 받은 것은 1996년이었습니다. 그 때부터 우리 교회는 “이웃을 부요하게 하는 교회(사람들)”라고 사명을 선언했습니다. 이것은 총제적인 선교적 사명에 대한 표현입니다. 우리의 사명선언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웃을 부요하게 하는 교회”
“The Church Enriching Neighbors in Christ"
(고후 6:10, 고후 8:9, 마태 28:18-20)
반월제일 교회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합니다.
우리의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열정을 가진 제자들이 되며,
스스로 낮아진 삶을 살아 이웃을 부요케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께서 고린도교회에 말씀하신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스스로 가난해지셔서 우리들을 영원한 생명과 아울러 총체적으로 부유하게 해주셨으니, 우리도 생명의 복음과 아울러 우리의 시간과 물질과 재능 모든 것에 대해 스스로 가난하게 살아 세상 이웃을 부유하게 하는 삶을 살자고 외치며 사역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는 경기도 안산시 반월동은 시 전체 중에서도 경제적으로 가난한 지역입니다. 처음에는 교인들 대부분이 ‘우리가 이렇게 가난하므로 우리가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누구를 부유하게 해 준단 말인가?’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평신도들 스스로 제안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이 있습니다. ‘이웃을 부요하게 하는 헌금’입니다.

최근에는 초등학생부터 대학 청년부가 함께 모인 사회복지단체 “이부사”(이웃을 부요하게 하는 사람들)가 발족되었습니다. 당회원들을 비롯한 장년 교인들은 우리의 다음 세대를 앞세워주며, 그들이 장차 이웃을 부요하게 하는 리더들로 성장되길 바라서 전심으로 후원하고 있습니다.

제가 목회자로서 이 지역 주민들을 볼 때 제일 안타까운 것은 꿈이 없이 사는 모습이었습니다. 많은 주민들이 ‘여기서 몇 년 고생해서 경제력이 좋아지면’ 안산시 중앙동이나 서울 강남 근처로 이사 가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이루는 심정 속에 세 가지를 성도들 가슴에 심어주려고 애를 썼습니다.

첫째는, 주님도 나사렛 촌사람이셨다는 것입니다. 사회의 경제적 편견 때문에 스스로 갖게 된 주변인 의식. 그래서 ‘예수님도 주변인이셨다’고 표현했습니다.

둘째는, ‘반월에서 인물난다’는 소망입니다.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그 분의 은총 속에서 자라는 이들이 세상을 창의적으로 이끌어 가는 인물이 된다는 소망을 전한 것입니다. 반월에서 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인물들이 태어날 것이라고 하는 꿈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셋째는, 능동적으로 살자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움직임은 능동 또는 수동으로 구분됩니다. 세상의 언어들도 능동태와 수동태로 나눕니다. 헬라어에는 중간태가 있습니다. 중간태는 수동태 모양을 하고 있는 능동적 의미의 동사입니다. 인생을 애매하고 어정쩡하게 살고 싶은가? 전기나 물리적 충격으로 작동이 되고 싶은가? 아니면 창조주 하나님의 자녀답게 능동적으로 살 것인가? 우리는 특별한 절기가 되어도 헌금 봉투 하나 주보에 넣어주는 일이 없습니다. 능동적으로 자기가 찾아다가 헌금을 드립니다.

이제는 성도들이 자기 스스로 가난해지기를 택하여 이웃을 부요하는 삶을 스스로 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많은 젊은 가정들이 반월에서 신앙생활하고 자녀들을 여기서 키우고 싶어 합니다. 멀리 살던 이들이 반월땅으로 이사 오거나, 주변 도시에 좋은 집이 생겨도 여기에 살기를 결정하는 일들이 비교적 자주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떤 젊은 가정은 가족회의를 통해서 ‘우리의 가나안은 반월(제일교회)이다’라고 결정을 했답니다.

2015년 새 예배당에 입당하면서 성도들은 “예수 생명을 기뻐 누리고, 예수 생명을 전하는 일”에 매우 힘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각자의 가족 구원을 위해서, 그리고 이웃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일에 더욱 힘을 기우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 생명 운동”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을 ‘새로운 전기’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매년 5월에는 ‘전세대 예배’에 가족을 초청하여 전도하고 축복하는 예배를 드립니다. 10월에는 이웃을 초청하는 데 힘을 기우리며 ‘예수 생명 잔치’를 엽니다.

교회의 모든 부서 예배가 주보에 나와 있는 것이 색다릅니다.

어린이나 중고등부 예배의 귀중성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더 실천적인 면에서는 부모와 자녀들이 가정에서 “성도의 교제”를 나누게 하기 위함입니다. 주일에 예배드리며 받은 말씀이 무엇인가를 서로 알 수 있게 하고, 성도인 아빠와 성도인 엄마와 성도인 자녀 형제들이 성도다운 교제가 있는 삶을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가족 구성원들의 교회에서의 모습과 가정에서의 모습이 일치될 것입니다. 서로를 위해서 함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응답을 체험하며 신앙의 연대가 존경으로 계승됩니다.

청장년들은 주일 오전 예배에 받은 말씀을 마음에 새겨 적용하는 삶을 살도록 이끌어주기 위한 경건예배 모범을 주보에 싣습니다. 성도들의 가정과 구역(오이코스) 예배에 신선한 간증과 감사가 샘물 흐르듯 하고 있습니다.

주보를 보니 특이하게도 주일학교 부장, 선생님들이 설교를 하고 계십니다.

초대 예루살렘교회가 부흥의 절정에 이를 때 일곱 집사를 세웠습니다. 다시 살펴보니 사도들만 말씀과 기도의 종들이 아니고, 집사들과 일반 교인들도 그러했습니다.

1996년부터 반월제일교회는 온 몸이 살아 있을 뿐 아니라, 모든 신자들이 능동 역동적으로 사역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을 전하며 훈련했습니다. 2015년부터는 교회학교(주일학교) 각 부서의 학생들을 ‘말씀’으로 가르칠 리더십이 있는 평신도들이 직접 설교도 하며 교육사역을 합니다. 물론 교회교육을 총괄하는 부목사가 계십니다. 그러나 목사는 교육에 관해 명령하거나 간섭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평신도 지도자들을 도와드리기 위해 사역합니다. 교회학교교육의 열매에 대해 기대이상의 결과가 예측되고 있습니다.

지난 11월 4일에 법무부 표창을 받으셨습니다. 처음 부임하실 때부터 지금까지 화성직업훈련교도소 교정위원으로서 말씀도 전하시고 교인들과 여러모로 섬기고 계시는데요. 이 사역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있으신가요?

주님께서 갇힌 자나 목마른 이들을 선대하는 것을 곧 주님을 선대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교회가 세상의 모든 사역을 다 충분히 감당하진 못하지만, 교도소 수감자들을 위한 사역은 최우선하고 있습니다. 여러 영역의 살림을 다 감당하기에 교회 경영 재정이 부족할 때가 자주 있지만, 교도소 사역을 위해서는 결코 소홀하거나 인색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혹 외부로부터 교도소와 관련한 어떤 사역을 위해 재정적인 요청을 받게 될 때에도 우리는 한 번도 거절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교도소 사역을 위해서는 평신도들이 여러 모양으로 직접 헌신합니다. 그 일을 꾸준히 하다보니까 법무부에서 우리 교회를 칭찬해주었습니다.

한목협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계신데요. 교갱협 임원분들의 한목협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은데 한목협을 통해 느끼신 점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옥한흠 목사님께서 한국교회를 위하며 이 나라 백성들 주님께 인도하는 일을 위해 한목협을 세우시고 열정을 쏟으신 것이 성경적으로 옳은 일이었다고 확신합니다. 또한 한목협도 교회여야 하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우리 모두는 내 자신이나 내 교회나 우리 교단의 울타리를 넘어 한국전체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제가 한목협에 적극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은 한목협이 목적을 이루도록 함께 기도하는 불쏘시개가 되려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 교갱협 목사님들이 한목협을 위해서도 시간의 배려를 해주시는 것입니다.

목사님 흰머리가 속상한 일이 많아서 생기셨다고 농담하신 적이 있는데 지금은 어떠신지요? 나중에 은퇴하시면 교회 성도들에게 어떤 목회자로 남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저의 “흰머리”를 비유로 목회의 어려움을 풍자한 것은, 성도들이 목회의 어려움을 이해하시고 옳은 일에 기꺼이 함께 하자는 호소였습니다. 가끔은 목회현장이 날마다 지레밭처럼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만, 저의 머리는 일찍이 부터 백발이었죠.

후에 제가 은퇴를 하면 성도들은 곧 잊고 별로 기억하지 않을 것입니다. 선명하게 선한 기억을 한다면 그것은 리더십이 교체될 때에 문제를 일으킬 것입니다. 나는 재빠르게 잊히고 오직 주님의 말씀만이 기억되길 바랍니다.

다만 성도들은-무슨 사역에 대해서건 어떤 사건에 대해서건 - 하나님의 말씀으로 평화의 의논을 하여 바른 결론에 도달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영의 생각을 하는 공동체! 저는 성도들로 그 공동체 되도록 하는 일에 깨끗이 헌신하는 소리이다가 사라져갈 뿐이고, 우리 성도들은 성경적 분별력을 가지고 대를 이어가길 바랍니다.

바쁘실 텐데 시간을 내어 귀한 말씀 전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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