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아침이다.

오늘 설교할 성경을 묵상하다 마음에 차오르는 영혼의 찬송을 부른다.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옛 것은 지나고 새사람이로다 그 생명 내 맘에 강같이 흐르고 그 사랑 내게서 해 같이 빛난다. 영생을 누리며 주 안에 살리라 오늘도 내일도 주 함께 살리라”

오늘 초청받아 설교할 곳은 농촌(담양) 교회이다.

성경을 강론하며 이해를 도울 쉬운 예화 하나도 건졌다. 미국 최고의 부자였다는 존 데이비스 록펠러의 ‘나눔의 즐거움’이다. 죽을 병에서 살아났던 감동적이고 누구나 한 번은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이다.

록펠러는 어려서부터 암산 재능과 함께 수학 능력이 뛰어났다고 한다. 신앙생활을 잘하는 어머니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즐거워했다. 말하자면 어머니를 본받아 살았던 체험담 같은 것이다. 어떻게 보면 사소한 것이지만 신자들의 일상 생활 습관이다.

첫째, 항상 십일조 드리는 생활을 잊지 말아야 한다.
둘째, 교회에 가면 맨 앞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려야 한다.
셋째, 교회 일에 순종하고 목사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아야 한다.

록펠러는 젊은 나이 33세 때 ‘백만장자’가 되었고, 53세에 세계 최대 갑부라는 평판을 받았다. 세상 것으로야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그러나 사람의 일이 호사다마라 하지 않던가. 그의 삶에 예상치 못했던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헤어나기 어려운 위기가 덮쳐온 것이다. 그때 의술로는 고칠 수 없는 불치병에 걸렸고, 1년 이상은 살지 못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사형 선고나 다름없는 진단을 받았다.

절망 가운데 희망이 있고, 불행 가운데 진정한 행복을 맛보는 것일까. 어두움 가운데 여명이 있고 새날이 있는 것 아닐까. 사망의 어두움 같은 병원생활을 하던 중에 놀라운 일을 체험한다.

휠체어를 타고 검진 받으러 이동하다가 로비에 걸린 액자의 글귀가 시선을 끌었다. 무심코 지나칠 수 없는.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 그런 글이었다. 그 순간 어떤 생각이 마음 깊이 파고들었다. 온몸이 떨리고 눈물이 났다. 그리고 이상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는데 눈을 지그시 감고 깊은 생각에 사로잡혔다. 웬일일까? 신자들의 삶을 신앙적으로 이해한다면 ‘성령의 강력한 임재, 또는 성경의 감동’이었으리라.

그때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한 여자가 딸의 입원비 문제로 병원 직원에게 통사정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픈 딸을 데리고 온 어머니에게 미리 납부해야 할 입원비가 없어서 접수를 거절당한 것이다. 그녀는 울면서 아픈 딸을 입원시켜 치료해달라고 호소하고 있었다. 어려운 사람의 딱한 사정이었다.

록펠러는 비서를 불렀다. 어머니를 대신하여 병원비를 지불하고, 그 가족에게는 누가 병원비를 지불했는지 모르게 하라 했다.

그렇게 해서 그 소녀는 잘 치료되어 건강을 회복했다. 가족이 기뻐하는 모습을 지켜본 록펠러의 마음에 큰 기쁨과 행복감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록펠러는 그때부터 나눔의 삶을 살게 된다. 그 일이 있고부터 자신의 마음에 평안이 찾아왔고 아울러 불치병도 점점 사라졌다. 누가 이런 기적을 베풀었을까? 나눔의 기쁨, 마음의 행복이 절망이라는 죽음의 그림자를 몰아낸 것이다.

록펠러는 지금껏 돈과 사업에 쫓기듯 살았지만 그 후로 나누는 삶으로 기쁨과 행복을 누렸다. 구제하고, 학교를 설립하고, 자선 사업 단체를 운영하였다. 자서전에 그때 일을 두고 "저는 살면서 이렇게 행복한 삶이 있는지 몰랐습니다.“라고 회고했단다.

그렇다. 마음의 즐거움으로 죽을 병만 아니라 눈물도 한숨도 근심도 멀리 떠나가리라. 성경은 말씀하신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누가복음 6:38)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로마서 12: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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