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차]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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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차]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 김태일 목사
  • 승인 2019.04.02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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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2) 교갱협 제23차 영성수련회 폐회예배

고린도전서 7장 17-24절
17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18 할례자로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19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20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21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거든 그것을 이용하라 22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23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24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사도바울은 고린도서에서 교회 안의 분열의 문제, 가정의 문제, 부부간의 문제, 이혼 문제, 심지어 재혼 문제와 방언의 문제 등 수많은 실제적인 문제들에 대해 해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사역의 현장으로 돌아가면 또다시 이런 많은 문제들에 맞닥뜨려질 텐데 본문을 통해 해결의 원칙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살다보면 인생의 많은 문제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 문제들의 해결을 찾는데도 이 원칙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첫 번째 원칙은 본문 17절에 나와있습니다.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바울은 주께서 오직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각양의 은사를 나눠주셨기 때문에 나눠주신 그대로 행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7장7절에서도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는 각각 하나님께 받은 은사가 있지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부르신 그대로 행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았으면 한 달란트 그대로, 두 달란트 받았으면 두 달란트 그대로 행하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다음 천국에 가면 유능한 사람이 무능한 사람보다 상을 더 많이 받습니까? 달리 말하면 이 땅에서 달란트를 많이 받은 사람이 적게 받은 사람보다 상을 더 많이 받습니까? 아니죠. 우리가 상을 받는 것은 내가 받은 달란트를 가지고 어떻게 살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얼마나 받았느냐는 문제가 아닙니다. 내가 받은 것 가지고 어떻게 살았느냐, 충성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게 능력이 부족하고 가진 것이 없다고, 달란트가 없다고 다른 사람보다 여건이 좋지 않다고 쉽게 낙심하고 좌절하고 불평 불만할 일이 아닙니다. 능력이 없어도 두 렙돈을 드렸던 여인을 보세요. 더 칭찬받지 않았습니까? 능력은 없어도 최선을 다해서 누구보다 헌신하고 충성했기 때문입니다.

사역자 여러분,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주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충성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그리하면 이 다음 하나님 나라에서 큰 상을 받게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천국에서 상급이 있음을 분명히 믿으시지요? 한번은 대전에서 개척교회를 하며 고생하는 후배목사님 부부를 만났는데, 저를 만나자마자 이렇게 질문하는 겁니다. “형님, 천국에서 상급이 있다는게 정말 사실입니까?” 개척교회가 너무 힘들고 끝은 안보이니까 하는 질문 같았습니다. 신학적으로 천국에 상급이 있는가? 그것도 이슈 중에 하나입니다. 만약에 천국에 지상과 같이 서민도 있고 재벌도 있다면 그게 무슨 천국이냐고 실제로 이의를 제기하는 신학자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대답해야 되겠습니까? 요한계시록 22장 12절에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칼빈대학교 안토니 호크마 교수는 고린도전서 3장 말씀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므나의 비유와 함께 천국상급에 대한 대표적인 구절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각각 자기가 일한데로 자기 상을 받을 줄로 믿으셔야 됩니다. 아무튼 그 후배한테 제가 그랬습니다. "성경에 그렇게 쓰여져 있으니까 천국에 상급이 있다고 믿는 것이 믿음이다." 그랬더니 옆에 있는 사모한테 말하기를 "여보, 천국에 상급이 있다고 믿는 것이 믿음이라네." 그 얘기를 들으면서 제 가슴이 저렸습니다. 왜냐하면 그 후배는 제가 총신신대원 가기 직전 고등부를 지도할 때 그 고등부 회장이었습니다. 얼마나 기특한 친구인지 모릅니다.

본래 가정이 어려웠지만 예수님 믿고 헌신하고 신학교를 갔습니다. 그리고는 자기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에 가서 목회하기로 결심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지도를 놓고 기도하면서 보니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이 강원도인데, 그 때 상황에 영동고속도로 남쪽 산 속이 가장 가난한 것 같아서 그 산 속으로 들어가서 개척교회를 세 번을 했습니다. 나중에는 자기 돈이 없으니까 사모님이 결혼 전에 들어놓은 적금을 털어서 개척교회를 하는데 저하고 연락이 잘 안 닿는 거에요. 나중에 보니까 전화요금을 못내서 끊기고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강원도 산속의 탄광촌에 들어가서 광부를 하고, 하여간 얼마나 고생을 하는지 나중에 사모님은 이혼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재혼 주례를 섰습니다.

죄 많은 이 세상은 내 집 아니네.
내 모든 보화는 저 하늘에 있네.
저 천국문을 열고 나를 부르네.
나는 이 세상에 정들 수 없도다.
오, 주님같은 친구없도다,
저 천국없으면 난 어떻게하나 저 천국문을 열고 나를 부르네.
나는 이 세상에 정들 수 없도다.
저 영광의 땅에 나 길이 살겠네.
손잡고 승리를 외치는 성도들의 기쁜 찬송 하늘 울려퍼지네.
나는 이 세상에 정들 수 없도다.
오, 주님 같은 친구 없도다.
저 천국없으면 난 어떻게 하나.
저 천국문을 열고 나를 부르네.
는 이 세상에 정들 수 없도다.

본문 17절에 오직 주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대로,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는 이 말은 다른 말로 하면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며 살라는 말입니다. 이 내용은 18절에 보시면 할례의 문제에도 적용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18절에 "할례자로 부름심을 받은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마라.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자가 있느냐 할례자가 되지 마라" 또 20절에 보면 이것은 사회 신분상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네가 종으로 있을 때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할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오늘날로 치면 직장이나 일터의 문제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내게 주어진 일에 만족하며 주께서 허락하신 그 은혜를 충성을 다하여 열매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면 그것이 최고의 승리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너무나 현재 일에 불만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직장인은 직장인대로, 주부는 주부대로 너무나 현재 일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어떤 목사님이 하는 말을 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어요. 목사님들도 얼마나 만족하지 않는지, 신학교 교수님들은 틈만 있으면 큰 교회 담임이 되려고 하고, 반면에 또 목회하시는 목사님들은 틈만 있으면 신학교 교수가 되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일리가 있는 것 같아요. 목사님들이 신학교 교수가 될 수도 있지요. 그러나 그것이 만일 현재 자신의 직분에 대한 불만족이라면 그건 죄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가 목사건 평신도건 간에 바울의 말처럼 자족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야 경건이 큰 유익이 됩니다. "우리가 세상에 가지고 온 것이 아무것도 없음에,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라." 사도바울이 수제자 디모데에게 하는 말입니다. "디모데야,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만은 평생 만족하며 살아라."

동역자 여러분, 이제부터 하나님이 거저주신 그 은혜, 우리에게 각양의 은사를 나눠주셨는데 가정에서나 교호에서나 내게 주신 그 매일의 삶에 평생 만족하며 사시는 동역자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라

이제 우리 문제의 답을 찾는 두 번째 원칙이 19절 하반절에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여러분, 내가 몇 달란트를 받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가 얼마나 하나님 말씀대로 사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예수님이 말씀하신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의 주관심사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인가? 내가 뭘해야 내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합니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았는가? 나는 얼마나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삶을 살았는가? 특별히 우리는 내 자신을 갱신하고 교단을 갱신하고 한국교회를 갱신하겠다고 모인 사람들입니다. 목회의 key는 내가 얼마나 교인들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목사로 세우실 때는 그 교회에서 사랑받으라고 세우신 것이 아니고, 그 교회 성도들을 사랑해주라고 목사로 세우신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데 관심을 가져야 됩니다.

내가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가? 예수님의 말씀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물론이고 목사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까지도 먹고 마시고 입는 것에 관심을 갖기가 쉬어요. 이런 것은 하나님께서 있어야 되는 줄 아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다 아실 줄 믿고 나는 어떻게 하나님의 뜻대로 살까가 주관심사가 되어야지요.

목사나 사역자들은 이처럼 우리 하나님께서 다 아실줄 믿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 것인가? 여기에만 전념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마태복음 6장 25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이 말씀은 한마디로 말하면 목숨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고 몸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몸은 성령의 전입니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닙니다. 그러니 우리 몸 가지고 염려할 필요 있어요? 내 것 같이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1장 20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동역자 여러분, 진실로 목숨과 몸을 위하여 염려하지 아니하고 하나님 뜻대로 헌신하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우리 인생의 수많은 답을 얻는 세 번째 원칙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입니다.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며 살라.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물론 이 말씀은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 나오는 말씀이지만 오늘 본문에도 자리잡고 있습니다. 전체 결론이 이 말씀입니다.

22절과 23절 보면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종은 주인 뜻대로 먹고 마시고 무엇이든지 주인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제는 그리스도의 종이니까 먹든지 마시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앞뒤 문맥을 보시면 우리 생활의 모든 문제를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24절에서는 "형제들아 너희는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한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뜻입니까? 저는 이 말씀을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책을 읽다가 깨달았어요.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 1937년에 취조를 당하는데 검사가 민족 운동을 그만둘 생각이 없는가 물었답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 말하기를 "나는 평생 밥을 먹는 것도 민족을 위해서 먹고, 잠을 자도 민족을 위해서 잤다. 내가 숨을 쉬는 것은 민족운동을 하기 위해서이다."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를테면 애국자가 세상나라에 충성을 다 받치듯이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왕이신 하나님께 충성을 받쳐야 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 하나님 나라의 충신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이 그러면 일평생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 수 있을까요? 성자라면 몰라도 다 그렇게 살 수 있겠습니까? 일평생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완벽하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러나 틀림없는 것은 어떤 영역이건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 신앙의 목표, 삶의 기초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 삶에서 부족하고 넘어지면 우리는 회개하고 돌이켜야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일어나야 합니다. 다시 일어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번 교갱협 영성수련회에 참석하신 여러분들은 다시 일어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출발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로버트 콜만 박사는 "하나님의 보좌에 여러분의 초점을 두십시오. 무릎은 땅에 두고, 마음은 성경에 두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며 따르십시오. 그리하면 언젠가 우리 모두 다 하나님의 보좌주위에 모여서 우리가 살아온 날을 이야기 할 날이 있을 것입니다."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우리 하나님이 어떻게 나를 도와주셨는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를 구원해주시고 구원해주실 뿐만 아니라 나 같은 사람에게까지 직분 주시고 사명주시고 목사를 만들어 주신 그 은혜를 고백하는 그 날이 있을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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