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 조선은 최신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노비의 자식으로 집에서 제대로 공부할 수 없어 가출을 감행, 러시아 선장부부의 보살핌으로 러시아에서 공부를 한 뒤 34세에 최초의 한인 자치기관장이 되었던 최재형(그림)은 조국이 위태롭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고 최대의 항일의병 동호회를 조직하게 되었습니다. 1920년 4월 일본군에 체포되어 생을 마치기까지 조국 없이는 자신도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항일운동을 했습니다. 그는 러시아 정부로부터 훈장을 두 번씩이나 받고 니콜라이 2세
제3차 캄보디아 현지교회 지도자 역량강화 사역을 마쳤다. 깊고 깜깜한 밤하늘을 날고 있는 귀국행 비행기…, 나는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면서 마신 스타벅스 커피 때문인지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상념의 두 날개를 활짝 펴고 비행기와 같이 하늘을 날았다. 음~, 오늘은 첫 문단부터 글줄이 잡히는 것 같군. 풉~. 이상하게도 선교여행에선 캄보디아의 하늘을 자주 바라보게 되더라. 아마도, 내가 틈만 나면 울 교회마당에서 하늘을 쳐다보는 게 습관이 돼서 그런가 보다. 그렇게 하늘을 보면서 든 생각 하나, 하나님 품이 이렇게도
경북 청도에 연합집회를 인도하러 갔었습니다. 청도하면 ‘소싸움’이 유명한데, 그 지역 교회들은 싸움이 아니라 연합에 열정적이었습니다. 우스개소리이지만 미국의 어느 분께서 작은 방에 개, 고양이, 쥐를 집어넣고 3일 후에 열어 보았답니다. 예상대로라면 서로 물고 뜯다가 다 죽어 있어야 하는데 예상외로 너무나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야, 이거 희망적인 실험이구나...!’라는 마음에 그 좁은 방에 침례교인, 장로교인, 그리고 감리교인 세 명을 들어가게 하고 3일 후에 열어 보았답니다. 놀랍게도 다 죽어
사랑하는 제자에게 결혼주례를 부탁받았습니다. 대학 다닐 때부터 결혼주례는 꼭 나에게 부탁하겠노라고 마음먹었다고 합니다. 배우자가 교직에 근무하고 있어서 방학기간에 급하게 결혼 일정을 잡고 연락을 해온 것입니다.무척 감사했습니다. 벌써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나를 기억하고 있었고 거기다가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순간인 결혼식 주례를 서달라고 하니 얼마나 고마운 일이겠습니까? ‘나’라는 존재가 누군가의 기억 속에 있다는 것은 참으로 기쁘고 감사한 일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기억해주고, 소식을 준다거나 찾아줄 때 나의 존재감을 확인하게
이 땅의 삶은 제한돼 있습니다. 모든 삶은 출생연도와 사망연도 사이에 무엇을 위해 살았고 누구를 사랑했고 무슨 열정과 꿈을 가졌었고 무엇을 이뤘는가로 축약됩니다.서울 합정동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에 있는 프랭크 브로크만의 묘비에는 ‘미국 버지니아 출생, 28세의 나이로 1905년 내한, 24년간 선교사로 일했다. 평화의 사람, 한국인의 친구, 프랭크 브로크만 무덤’이라 쓰여 있습니다.지금 당신의 오른손을 왼쪽 가슴 위에 대어 보십시오. 심장 박동을 느낄 수 있습니까. 맥박이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아직 하나님이 지으신
새해 벽두에 남북관계가 다시 냉각상태로 변했습니다. 북한이 수소폭탄 실험으로 전 세계를 향해 도발을 감행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여름 북한의 목함지뢰도발과 포격도발로 인해 군사적 긴장상태에 있다가 가까스로 남북고위급회담이 타결되어 남북 간의 대화와 교류가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일을 보면서 통일의 물꼬가 트이기를 기대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했고, 그 일에 대한 대응으로 대북확성기 방송이 재개됐습니다. 최전방지역은 극도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고 합니다.남북이 합의한지 5개월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송구영신예배가 감동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가 있는 예배이니 당연할 것입니다. 한 해의 마지막을 보내고, 새해의 시작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현장이니 참으로 의미 있는 순간이었습니다. 더더구나 지난 한 해에 하나님이 보내주신 새가족들의 영상과 한 해의 사역을 돌아보는 회고영상을 볼 때는 ‘주님이 하셨습니다!’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님의 은혜로만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예배의 마지막 부분에 유치부 아이들로부터 청년들까지 4~50여명의 다음세대들이 강단을 가득 메우고 무릎 꿇고 있는 모습은 가히 압권이었습니다. 그
기원전 559∼530년 페르시아 제국의 부흥을 이끈 키루스 2세(구약성경에서 고레스 왕이라고 불리는 인물)는 자국민뿐 아니라 식민지 사람들에게서도 존경받는 군주였습니다. 페르시아인들은 키루스를 자신들의 아버지라 불렀다고 합니다. 후일 페르시아를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도 그의 위대함을 기려 그의 무덤을 파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어떻게 존경받는 군주가 됐을까요. 그가 리디아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후 수많은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왔을 때 페르시아 귀족들은 “우리 귀족들이 먼저 전리품을 나누어 가집시다”라고 했습니다. 키루스 2세는 “
약체 팀을 맡아서 준수한 성적을 내는데 유명했던 야구감독 김인식 집사님이 계십니다. 경기도 수지에 있는 모 교회를 다니시는데 그 부인 집사님과 식사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연세에 비해 단아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의외로 불면증으로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남편이신 김 감독님은 어느 때, 어느 장소에서라도 잘 주무신다는 것입니다.그런 남편의 주무시는 모습을 보면서 부럽기도 하지만 때론 이렇게 중얼거리기도 한답니다. “돌아가시게 되면 끝없이 잠을 잘 텐데 왜 지금부터 저렇게 오래 주무실까?” 부부는 닮은 것 같으면서도 닮지 않은 부
그래도 희망은 보입니다. 한국교회가 여전히 생명력이 있습니다. 수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바른 신앙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고, 그렇게 살고 싶어 한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KBS에서는 성탄절을 맞이하여 지난 25일(금)에 다큐멘터리 ‘일사각오 주기철’을 방영했습니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반응이 참으로 뜨거웠습니다. 제 주변에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TV 방영 전에는 여러 단체와 목사님, 성도님들에게서 꼭 시청할 것을 권하는 홍보 문자로 제 폰에 불이 났습니다. 그리고 방영 후에는 감동과 결단의 고백들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습니다.그렇게 많
사람은 생각과 행동, 관점의 차이가 있습니다. 차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날마다 느끼는 한 부분입니다. 당신은 가정·사회·교회 생활 가운데서 심각한 차이를 느낄 때 어떤 생각이 떠오릅니까. 그런 차이를 생산적으로 이끌어 가십니까, 아니면 차이로 인해 삶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갑니까.우리는 자기와 생각이 다르면 마귀계통, 암흑의 세계로 몰아붙이는 흑백 논리의 민족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 12장에서는 “그리스도인의 건강한 삶은 모든 사람이 획일적으로 같아야 된다는 것이 아니라 서로 그리스도 안에서 한몸인 동시에
지난 화요일은 쥬빌리통일구국기도회 1주년을 맞아 특별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북한을 떠나온 바이올리니스트 정요한 집사님과 피아니스트 김예나 집사님 부부를 초청하여 찬양연주와 간증을 들으며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세계적 수준의 바이올린 연주 실력은 음악에 문외한인 나까지도 심취될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김정일 전용악단의 악장 겸 단장을 역임한 북한 최고의 엘리트로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런 분들이 사선을 넘어 온 것은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곧 마음껏 하나님을 예배하고 싶어서였습니다.국내에 들어와서도 그의 실
오늘의 현대인들이 쉽게 범죄에 빠져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죄를 범할 때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 본능적으로 작용하는 사고(思考) 가운데 하나인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다’는 것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행동과 생각과 모든 것을 보십니다. 하나님의 눈을 바로 보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만이 악에 빠지지 않는 것입니다.성경은 욥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욥 1:1) 많은 사람들이 욥기의 가장 중요한 주제를 ‘고통’이나 ‘고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욥기의 주제는 ‘왜
4기 제자훈련을 마무리하면서 증도에 있는 문준경전도사 순교기념관으로 수련회를 다녀왔습니다. 벌써 다섯 번째 방문한 증도였지만, 또 다시 나의 가슴을 울리는 믿음의 현장이었습니다. 교회에서조차 순종, 헌신, 일사각오 등의 표현을 부담스러워하는 이 시대에 다시금 절대신앙으로 마음을 다져보고 싶습니다.문전도사님은 증도를 비롯한 신안군 일대의 섬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수많은 교회를 개척했던 순교신앙의 어머니였습니다. 그의 복음의 열정은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마을로 들어가면 길을 막고 욕을 해대는 것은 기본이고, 예배를 드릴
뉴스를 보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많은 사건이 펼쳐집니다. 학력을 속이고 뇌물을 받고 불륜을 저지르고 논문을 표절하고 그래서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유명인이 많습니다. 그런 잘못된 선택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탐욕입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서 자기의 성공을 만인이 알아주길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걸핏하면 “당신 내가 누구인지 알아?”라며 자신의 정체성을 남에게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늘 대접 받기를 원하는데 자신을 몰라주니까 화를 내는 것이지요. 쉽게 화를 낸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오만하다는 증거입니다.
요즘 세간에는 수저계급론이 등장하면서 씁쓸한 마음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부모의 재산 정도에 따라 계급이 정해진다는 것을 뜻하는데, 우리 사회의 잘못된 가치관을 그대로 드러내주고 있는 듯합니다.자산이 얼마인가, 얼마나 벌고 있는가 등 오직 경제력(돈)으로 그 사람을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 등의 계급으로 정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들이 유행하는 것은 어려운 현실을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들의 절망감을 대변해주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질 것 같지 않은 현실과 그렇게 타고나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 체념을 표출하는 것이
한때 서정윤 시인의 ‘홀로서기’라는 시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그 시절 홀로서기를 꿈꾸며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홀로서기’를 노래하지 않는 것 같다. 대신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노래한다. maybe..., ‘홀로서기’ 당시에는 나름 열심히 살면 홀로설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있는 시대였던 모양이고, 그 희망을 부여잡고 오늘의 고통과 고난을 이겨내며 홀로서는 노력을 하며 살 수 있었지 않나 싶다. 그런데 그때 그 사람들이 더 이상 ‘홀로서기’를 노래하지 않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노래하는 것은 아무리 참고 노력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은 연설 중에 “위기는 기회와 함께 찾아온다”고 했습니다. 개인이든 가정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잘 되기 위해서는 비전과 문화 그리고 실력, 이 세 가지가 있어야 하는데 그 중 제일 중요한 게 문화입니다. 문화란 신명과 열정입니다. 아무리 비전과 실력이 있어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위대한 예술과 문학, 건축물 뒤에는 열정이 숨어 있습니다. 작곡가가 만들어 내는 감동적인 음악, 육상 선수가 이전 기록을 깨고 세우는 신기록은 그들의 열정을 원동력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하나님은 우리 삶을 그분의 열정으로 채
어제 강도사님의 결혼식에서 전했던 말씀을 온 성도들과 함께 나누고자 핵심 내용을 게재합니다. 다시 한 번 하나님이 뜻하신 결혼의 의미를 생각하는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첫째로, 결혼은 존재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두 사람이 만나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신비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여전히 우리 눈에는 두 몸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몸이라고 하십니다. 1+1은 ‘2’가 아니라 ‘1’이 되는 성경적 결혼 공식을 발표하신 것입니다. 하나의 몸이고, 하나의 살로 존재하는 것입니다.하나님은 남자 아담의 갈빗대를 취하여 그것으로 여자 하
자공이 어느 날 스승인 공자에게 정치의 요점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공자는 족식(足食·탄탄한 경제력) 족병(足兵·튼튼한 군사력) 민신(民信·국민의 신뢰도)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자공은 또 물었습니다. “이 셋 중에 부득불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버려야 합니까?” 공자는 ‘병’을 버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자공이 또다시 물었습니다. “양식과 신뢰 가운데서 또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요?” 공자는 “당연히 양식을 버리고 신뢰를 남겨야지”라고 답했습니다.백성의 신뢰가 없다면 그 나라와 정부는 존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뢰야말로 어떤 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