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7일 부흥회를 인도하기 위하여 서울에 있는 S교회에 갔다. 이 교회는 최목사님이 개척하여 크게 성장한 교회(재적성도 8000여 명)였다. 작년 가을에 집회를 인도하고 두번째 봄 집회를 인도하기 위하여 간 것이다. 지방에 있는 젊은 목사를 두 번씩이나 불러준 담임목사님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기 위하여 행정목사님의 인도를 받으며 담임목사님 방을 찾았다.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데 잠시 후에 목사님이 나오셨다. 구면이기 때문에 서먹하지도 않았다. 그저 서로 반가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따끈한 녹차 한잔
드디어 16대 총선이 끝났다. 숱한 변수와 사건 등이 있었지만 초미의 관심은 시민운동 단체의 낙천, 낙선운동이었다. 그리고 투개표 이후에 가장 주목할만한 사실은 '지역주의가 드디어 완결판을 찍어냈다'는 것이다. 말할 수 없는 절망감에 젖었다. 과연 이 나라, 이 겨레는 지역주의의 망령과 지역 감정이라는 망국병을 극복하지 못하는 것인가? 남북분단의 한(恨)말고도 동서까지 분단되어야 하는가? 총체적인 국력을 위해 국가통합이 이뤄져도 좁은 국토와 가용자원이 없는 나라이기에 오직 살 길은 인력자원인데 그것마저 갈기갈기 찢겨졌으니...이
매년 부활절이 다가 오면 교회마다 여러 행사로 북적거린다. 그러나 연례 행사로 그치는 안타까움이 있다. 만일 부활절이 2천년 전 예수 부활을 기념하는 잔치로 그친다면 박물관의 소장품을 꺼내 전시회를 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부활절은 행사가 아니라 부활 신앙의 회복을 위한 모멘트이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자칫 빠지기 쉬운 신앙의 무기력증과 매너리즘의 구각을 깨뜨리는 좋은 기회인 것이다.금년 부활절에는 구호만의 부활이 아니라 진정한 부활 신앙을 회복해 보자. 마른 뼈처럼 곳곳에 널브러져 있는 영적 패잔병들이 살아나 그리스도의 정병으
신대원을 다닐 때 최홍석 교수님께 늘 듣던 말이 있다. "개혁된 교회는 계속 개혁되어야 한다."최교수님이 전해주는 이 말이 나를 감동시켰고, 이 감동이 나를 교갱협 회원이 되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목회현실에서는 개혁이나 갱신이란 말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의도적으로 피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개혁이나 갱신이란 말이 본질적인 의미는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왜곡되는 경우를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개혁이나 갱신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비판'이다. 예수님은 비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지만 일반적으로는 개혁이나 갱
예레미야 5장 1절은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는 말씀을 기록하고 있다.지금 우리 사회에 있어서 가장 시급한 일이 있다면 IMF 상황의 극복이나, 총선, 혹은 남북통일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성원 모두의 도덕성 회복이다. 이제까지 사회는 물론이고 심지어 교회까지도 성장과 성공, 부흥의 논리에 밀려 도덕성 문제에 대해 너무나 무관심했던 것이 사실이다. 도덕성은 한 사회의 기초를 이루는 문제다.
요즘 우리는 소위 시민단체들의 힘을 본다. 이전에는 감히 생각할 수 없었던 정치권을 향한 큰 목소리다. 선거법을 고치라는 주장을 비롯, 국회의원으로서 부적격자 명단을 발표하고 각 당에서는 이런 사람을 절대로 공천하지 말라, 만약에 공천한다면 낙선운동을 벌이겠다고 말한다. 옛날 같으면 있을 수도 없는 도전이다. 그러나 그들이 제시한 객관적 심사기준에는 몇가지가 있다. 즉 부정부패, 무능, 반민주적 언행, 선거법 위반(주로 돈 쓰는 것) 등등.이런 시민단체들이 앞으로도 더 확대하여 활동할 것이라고 선언하며 심지어는 법이 정한 테두리를
"저는 젊은 목회자 시절에 서울로 갈 것인가, 아니면 시골 교회에 그대로 붙들려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로 고민했습니다. 농촌에 주저앉아버리면 교회 형편으로 보아 자녀들을 대학까지 보낼 수 없는 것은 뻔한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서울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주님 일을 했고 주님은 저의 모든 것들을 책임져 주셨습니다. 목회는 내가 죽으면 되는 것입니다" 이미 은퇴했지만 후배 목사들을 사랑해서 들려주시는 정 목사님의 애정어린 권고였다."저는 수년 전, 예배당 건축에 실패했습니다. 교회를 개척하고 의욕적으로 일하면서 하나님께 도
"거짓된 인간이라고 판명되는 것보다 인간에게 더 수치스러운 일은 없다."(몽테뉴)고 했다. 20세기말의 한국교회는 수치스러운 교회였다. 세상에 전혀 소금과 빛이 되지 못했다. 부정 부패 비리의 현장에 언제나 교인들이 감초처럼 늘 끼어있었다. 그 결과 세상 사람들에게 혐오의 대상이 되어 버렸었다. 청문회 때 뻔뻔스러운 거짓말은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형편없는 인격자들이었는가 그 맛을 만천하에 보여주었다. 그 결과 교회는 전도가 되지 않아 98~99년에 한국교회의 대표적 7교단의 교인은 -0.15% 줄어들었고, IMF 여파도 있
최근 정치인들의 구태의연한 정치행각들이 국민의 따가운 눈총들을 받고 있다. 특히 경실련 등 시민단체가 '2000년 총선시민연대'를 결성하여 부자격자 낙선운동을 시작했고 합법적인 운동을 위해 선거법 87조의 개정 및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YMCA,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사립대교수연합 등 4개 교수단체도 이 운동을 지지하며 연대를 선언하였다. 제5권력이라고 하는 NGO의 영향력이 이번 총선에 크게 미칠 것 같다.이런 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연대움직임을 바라보며 21세기 시민사회를 향한 교회의 역할을 생각한
자신이 속한 단체가 발전되기를 모든 사람들이 원하듯이 성도들 역시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가 더욱 발전하기를 원한다. 그런데 여기서 발전이라는 의미는 성장하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형식과 내용이 바람직한 모양으로 점점 바뀌어 가는 것을 의미하며, 외형만 있는 것이 아니고 내용도 있어야 하고 그 내용이 질서와 형식을 점점 갖추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목회자는 교회와 목회자가 바른 모양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장차 바람직한 모습이 되기를 소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이런 바램을 현실화하기 위해 교회갱신을 위한 목회자협의회가
다분히 규제 일변도로 느껴지는 총회정책은 과연 어떤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 묻고 싶다. 84차 총회를 다녀온 후 새로운 시대에 맞는 교단의 정책과 미래 대안은 무엇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실례로 2년여 동안 연구한 결과로 총회 석상에서 배부되었던 '21세기부흥발전기획단'의 정책제안서는 아무런 검토도 없이 폐기처분되고 말았다. 배부된 내용을 참석한 총대들이 과연 몇분이나 읽어보았을지 의문이 들었다. 보고서 제출을 위해 들인 시간과 재정을 감안한다면 한 번이라도 내용을 읽어보고 시정할 부분이 있다면 시정을 명령하
교회갱신협의회가 출범한 이후 몇 년 동안 사역을 진행하면서 교회의 새로움과 부흥을 꿈꾸는 많은 동역자들의 참여와 관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교회갱신을 향해 같은 꿈을 가진 동역자들의 지속적인 격려가 없었다면 갱신운동을 향한 용기를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이제 새 천년을 맞으면서 교회갱신을 향한 비전을 제시해 본다. 모든 사람들이 갱신의 필요성을 말하고 소망 중에 새 천년을 기다려왔지만 문제는 새 천년의 시간이 왔다고 해서 일시에 모든 것이 바뀐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세기말 교회갱신의 필요성을 절감한 동역자들이 함께 고민
필자는 평신도를 깨운다 목회자 훈련 4기를 수료하면서 새로운 목회의 패러다임에 눈을 뜨게 되었고, 담임 목회자로서 한계와 갈증을 느끼던 중에 교갱협의 목적에 동의하여 출범기부터 동역하다가 현재 회계의 직분을 감당하고 있다. 새 천년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교갱협 출범 이후 4년여 시간을 지나면서 몇 가지 특징을 꼽을 수 있었다.첫째, 거마비가 없다는 점이다. 철저히 자비량으로 모이는 순수 목회자의 모임인 것이다. 둘째, 바른 의견은 누구든지 제의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회장을 향해서 조차 입바른 소리를 하고 스스로
개인으로나 교회적으로 새해를 맞는 기대감이 다른 어떤 해보다 더 큰 것은 새 천년의 시작이라는 사실이다. 문화적 환경의 변화와 정보의 홍수 그리고 정치 경제와 국제관계의 엄청난 변화의 시대에 교회도 힘겨운 몸부림으로 새 천년을 대비하고 있다. 각종 세미나와 정책 계발 그리고 다양한 프로그램이 많고 인터넷에 들어가면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좋은 자료를 얻기도 한다.그렇지만 기도하면서 성경 읽고 성령의 감동으로만 듣게 될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할까 염려해야 한다. 과학주의와 인본주의 그리고 쾌락주의에 빠져서 도덕성이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