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계의 현 상황이 절망적일 정도로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특히 70,80년대의 도시 집중화 현상 및 제반 사회 현상의 부수적인 요인이 급속한 교회 성장의 한 요소로 작용하면서 그를 위해 복음과 그리스도인의 성경적인 수준을 타협하여 사람들을 끌어 드렸다. 게다가 교단의 세(勢) 불리기와 교회 성장의 환상 때문 부적격 목회자를 양산하는 신학교 시스템은 마치 불난 데 기름을 붓듯 한국교회 전반의 심각한 변질과 타락 현상을 열매로 거두게 됨이 과거와 현재를 어우르는 한국교회의 모습이다. 모든 목회자와 교회, 교단이 여기에서 결코 자유
「레옹」이라는 영화를 보면 어린 여자 주인공 마틸다가 의붓 언니에게 얻어맞아 코피를 흘리면서 레옹에게 "아저씨 저처럼 어릴 때만 인생이 힘든가요?"라고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에 대해 레옹은 "어른이 돼서도 힘들다."고 짤막하게 대답하고 마는데 어린 소녀에게 전혀 위안이 될 것 같지 않은 말이지만 마틸다는 고개를 끄덕거립니다.어느 통계를 보니까 지난 여름 하루 평균 38명이나 되는 생명들이 우리 사회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카드 빚에 내몰려, 신병을 비관해서, 자기만족을 이룰 수 없어서...사실 남의 이야기 같
문득 이 글 제목을 쓰며 생각하기에도 끔찍했던 대구지하철 방화 사건을 떠올려 본다. 만일 그때 제대로 비상구가 있었고 비상 탈출이 가능했더라면 그 엄청난 생명들을 구할 수 있었을 텐데, 스러진 생명들로 인한 처절한 상처와 상실의 아픔도 없었을 텐데...그러나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비상구 없는 또 다른 종류의 절대절망이 바로 우리시대의 교회와 목회자들에게 있다. 우리가 다만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거나 애써 부인할 따름이다. 비상구 없는 극한 상황에 처한 인간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공포 가운데 죽음을 기다리는 것밖에 아무 것도
"너무 풍족하고,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교회에 갈 필요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 어딘가에 소속되는 것, 긴밀하게 조직화 되는 것, 규율과 공동체를 싫어하게 됐고, 그런 대가로 고독감에 빠지고 있으며 교회는 극심한 개인주의와 이로 인한 결과에 저항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물론 아직까지 우리 나라 목회자의 고백은 아닙니다. 최근 기독공보 7월 26일자에 스위스 개혁교회를 탐방한 기자가 스위스 아인지델른 개혁교회 은퇴목사 한스 울리히 예거(Hans Ulrich Jaeger) 목사와 인터뷰하는 중에 나온 것을
인지과학적 시각에서 볼 때 사고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고 합니다. 먼저 특정한 상황을 자각할 때 겉으로 드러난 특징에 주목하는 경향이 많다고 합니다. 타인과 대화를 나눌 때에도 대화내용 보다는 그 사람의 외모나 옷에 더 주목하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은 대화하는 주제에 대한 관련지식이 부족한 데다가 알고 있는 지식조차도 서로 연관성없이 단편화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보이는 태도 중에 무엇보다 안타까운 사실은 그들 스스로 자신의 지식이나 사고력에 대해 점검하려 들지 않는다는
곧 있으면 교갱협의 가장 큰 연례행사인 여름 영성수련회가 개최된다. 놀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을 보며 여러 생각을 갖는다. 외부 선교 단체의 전문 세미나가 아닌데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올까? 그리고 세미나 내용이 목회 현장에서 바로 써 먹을 수 있는 '꿩 잡는 게 매'라는 식의 내용도 아닌데...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만만하지 않은 강사들, 충분히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목회 현실과 접목되는 주제들, 대부분의 여름 행사가 끝난 직후의 여유로움 등등이다. 아니면 교갱협의 위상이 날로 높아지고 정착되고
새 정부가 들어선 후 그 어느 때 보다 자주 언급되는 말이 있다면 "위기관리"라는 말일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위기상황에 직면해 있다고 말해온 것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닙니다. 항상 위기는 있어왔고, 위기는 오늘도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위기라고 외치는 '늑대소년'들에게 너무 많이 속은 터라 이제는 "늑대(위기)가 왔다."고 아무리 크게 외쳐도 꿈쩍도 안 하는 것이 오늘의 상황입니다. 정리하자면 위기를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위기인 셈입니다.지난 6월 18일자 「뉴스위
우리의 설교와 삶의 간격은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 흔히 설교를 '말로만 하지 말고 보여주는 것'이 진짜 설교라고 한다. 그래서 설교는 강단에서 설교가 끝난 다음부터 시작된다는 말도 있다. 물론 설교의 선포 성격 및 설교자의 불완전성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입으로서의 당위적인 사역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격적 존재이신 하나님은 설교자의 또 다른 인격을 통해 그분의 말씀을 선포하실 때에 비인격적이며 삶에서 분리된 가식(假飾)의 설교 아니면 기계적인 업무로서의 행위를 요구하시는 것은 분명 아니다. 여기에서 설교의 갈등과 진통
장 그르니에의 「카뮈를 추억하며」(민음사 간, 1997년)에 보면 카뮈의 다음과 같은 언급이 나옵니다."글을 쓰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고통을 치러야 하는가! 적어도, 화가는 소재를 붙잡게 되면 그 소재에 곧장 다가갈 수 있고, 자기 정신 속에 있는 것을 재빨리 현실화할 수 있는데..." 웹진을 열고보니 이 일이 그리 녹녹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 금방 판명났습니다. 이미 예상은 했던 일이긴 하지만 저를 포함한 세 사람의 전임사역자들이 세 기관(교갱협, 한목협, 교단장협)의 사역은 고스란히 맡고 있으면서 보름 단위
필자는 최근 친구 목사들과의 모임에서 서울 이촌동에 있는 모 초대형교회에서 수원지역에 지성전 개념의 교회설립을 준비하고 있으며, 그에 대해 수원시내 기독교 연합회에서 대대적인 반대운동을 일으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관계된 문서도 보았다. 그 문서를 객관적으로 검토한 결과 한 마디로 그 교회에서 주장하는 설립의 논지는 자본주의에 따른 약육강식 또는 빈익빈, 부익부의 자기 포장밖에 다름이 아닌 것으로 생각되었다. 수원 시내의 대부분의 교회들, 특히 중소형 교회는 생존(?)과 관계된 위기의식을 갖고 있었다. 물론 필자는 대형교회에 대한
사랑의교회가 5월 4일 세례교인 1만 2,074명을 대상으로 '옥 목사의 원로목사 추대(은퇴)'와 '후임 목회자로 오정현 목사(47) 청빙'에 대해 투표를 실시했고 그 결과 96% 이상의 찬성률로 통과가 되었다. 교갱협 웹진에서는 옥한흠 목사의 사역 마감을 즈음해 각 일간지 및 교계 언론사와 가진 인터뷰의 내용을 항목별로 재구성해 보았다.》사역마감공동의회 결과 후 느낌- 아주 편안하고 기쁘다. 우리 교인들이 참 성숙하다. 감정에 좌우되지 않고 교회의 미래를 위해서 긍정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자세가 있다.은퇴를 앞당긴 이유-
'스톡홀름 증후군'이란 1973년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발생한 은행 인질강도사건 당시에 생긴 현상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사건 당시에 피해자들이 정서적으로 범인들과 교감하게 되면서 오히려 인질이 강도들의 편을 들었던 현상을 일컫는 것입니다.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함께 어울리고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테두리 안에서 모든 것을 사고하고, 무엇인가 결정을 해야할 기로에 섰을 때도 소속되어 있는 범주 내에서 하는 것은 별 이상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곰곰이 되짚어보면 자기가 수용하고 정서적으로 안정을 느끼는 사람들 위주
최근 국내외 주요 사건의 이슈에 따른 보수와 진보의 갈등 및 대립이 그 예각(銳角)을 더하고 있다. 보수와 진보는 사람 따라 각기 선택하지만 대체적으로 세대에 따른 성향으로 나타난다. 어느 시대에나 세대간의 차이는 존재했지만 최근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 및 변화의 속도를 가늠할 수 없는 IT 세상과 그 문화의 영향으로 세대차는 대립의 양상으로까지 비쳐지고 있다. 친미와 반미, 이라크 파병에 따른 반전과 참전, 한교총과 전교조 등이 그 대표적인 현상이다. 아무튼 인류의 문화와 역사는 그 자체가 늘 살아 움직이는 역동성을 갖는다. 이 역
잡지라는 뜻을 가진 영어는 'Magazine'입니다. 이 말은 "창고 혹은 곡식을 저장하는 곳간"을 뜻하는 'Magazien'이라는 네덜란드어에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이 말을 가만히 놓고 보면서 '곡식창고'에 무엇을 저장하느냐에 따라 창고의 가치가 크게 달라지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허접쓰레기 같은 것을 저장하면 그것은 쓰레기장이 되고 말 것입니다. 반면에 정제된 알곡을 저장해 두면 그것은 알곡창고라 일컬어지게 되고, 배고픈 이들의 배를 불리는 귀하고 아름다운 일을 하게
최근 국내외의 가장 두드러진 이슈는 단연코 미국과 이라크의 전쟁이다. 우리는 어떤 시각을 가져야 하는가? 사람 따라 가진 세계관에 의해 그 기준과 관점이 결정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기초로 한 기독교 세계관 특히 복음주의 입장에서 이 전쟁을 바라봐야 한다. 근본주의나 자유주의 입장과는 다른 입장인 것이다.하나님의 샬롬구약성경과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샬롬이란 하나님과의 갈등이 없는 완전한 평화의 관계를 뜻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품이며, 인간이 창조되었을 때의 상태이고 에덴의 모습이기도 하다. 샬롬의 근원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
2003년 들어와서 많은 변화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정부의 변화는 거의 파격에 가깝다는 평을 듣고있고, 세계정세도 이라크전쟁을 맞으면서 급격한 변화의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변화하는 현장을 꼽으라면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 것 같아 그만두겠습니다.이런 상황에서 교갱협도 나름의 변화를 모색해 보았습니다. 그 동안 오프라인으로 「교회갱신소식」을 내면서 목회자의 자기갱신을 통한 목회현장 갱신에 필요한 자료를 나누어 오려고 나름의 노력을 해왔었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니 몇 개월에 한 번씩 나오는 소식
며칠 전에 어느 농촌교회에 목사위임식이 있어서 참석했다. 순서지를 보니 제1부 예배로부터 시작해서 목사위임, 헌당식, 집사 권사 임직, 축하순서 등으로 5부까지 짜여있었다. 아무래도 2시간 반은 걸릴 것으로 예상했는데 1시간 40분만에 끝났으니 좋은 점수를 줄만하다. 비좁은 예배당에 교인들과 이웃교회 목회자들 그리고 가족들에 아이들까지 꽉 차 있었다. 순서가 많은 만큼 강단에 서시는 분도 열 분이 넘었다. 예식이 계속되는 동안 교인들만 아니라 하객들도 확실히(?) 지루해하면서 순서 맡은 분들이 말씀을 짧게했으면 하는 바램들의 표정이
지난달 11월 25일부터 시작되어 약 2주간 동안 전국을 순회하며 개최된 교회갱신협의회 주최 "2003년도 교회갱신을 위한 목회준비 세미나"는 교갱협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케 한 매우 의미 깊은 프로그램이었다.물론 처음 실시한 모임인지라 준비과정, 강의내용, 그리고 동원문제 등 더욱 보완해야 할 점들이 많았지만 6개 지역에서 개최된 모임들은 대체적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것에 그 초점을 맞출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전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열린 각 지역별 세미나는 우선 전체 주제강의가 그 초점을 잘 맞추었다고
25년 전 처절하게 가난했던 나의 신학생 시절이 생각납니다. 미아리에서 333번 시내버스에 올라타는 순간부터 봉천동에서 하차할 때까지 인간짐짝이 되어 1시간동안 시달렸습니다. '헐떡고개'를 넘어가노라면 저절로 숨이 헐떡거렸습니다. 가난한 신학생 시절 기숙사비와 식비가 없어서 미아리에 있는 누나 집에서 학교를 다닌 것입니다. 학교 기숙사에서 먹고 자는 친구들을 보면 일류저택에 사는 부자처럼 부럽게 보였습니다.어느 날 초만원버스 안에서 몸싸움을 하다 보니 내 손은 가방 손잡이만 쥐고있고 가방도, 책도, 도시락도 없어졌습니다. 나중에
모든 목회자들이 그렇겠지만 항상 부족한 사람을 충성되이 여겨 목회자로 삼으신 것에 대해 필자 역시 늘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다. 어떤 분은 목회를 종합예술이라 했었다. 창의력도 있어야 하고 경영능력, 지도통솔력 등등, 이렇게 어려운 목회사역에 부름 받음에 감사하고 행복해 한다.그런데 최근에 청소년사역과 낙도선교사역에 매달려 오다가 25년의 역사를 지닌 기성교회에 부임하는 상황이 생겼다. 여간 낯설고 긴장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새사람들과 만나 사귀고 한 가족을 이룬다는 것 또한 기대되고 설레는 일이기도 했다. 부임한 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