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와 목회에서 갱신이 필요한 부분들이 많지만 그 중에서도 목회자 자신의 내적, 외적 차원의 갱신이 그 무엇보다도 시급하다. 여기서부터 다른 갱신도 시작하고 힘을 얻으면 더 좋은 결과를 이룰 것이다.
서론: 한국교회의 섬김사역 현주소최근 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를 통해 발표된 두 개의 설문결과는 한국교회가 지속해 온 섬김사역을 돌아보고 점검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2009년 기윤실이 발표한 ‘한국교회의 사회적 섬김 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종합사회복지관의 종교별 운영주체 분류에서 개신교는 절반이 넘는 52.15%를 차지하였다. 또한 노숙인복지시설은 62.8%, 학교는 72%, 지역아동센터는 53.13%였다. 대북지원과 해외원조에 대한 민간단체의 지원도 40.29%를 차지하였다. 기윤실의 이러한 보고서는 한국교회의 섬김사역의 현황을
최근 한반도 정세는 불안정한 상황에 처해 있다. 크게 3가지 요인이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나는 천안함 침몰사건으로 한반도 군사적 긴장관계를 심화시키고 있다. 다른 하나는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중과 양국 정상회담의 결과로 나타나는 중국의 대한반도 영향력 확대 상황 즉 중국발 쓰나미가 다가오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 안에 차이를 다양성으로 수용하고 함께 평화를 이루어 나가는 전제로서 화해는 우리 남한 사회의 내부적 사회적 갈등을 극복할 뿐만 아니라 남북의 분단 과정을 넘어서게 하고 한민족 재 통합 과정을 실효있게 하며 그 결과 평화 한국이 동북아 평화를 일구어 내며, 우리 한민족 공동체가 세계 평화에 더 깊이 기여할 수 있게 하는 세계 시민적 영성적 헤게모니인 것이다.
통일시대를 준비하는 교회는 적어도 동북아를 중심으로 하는 세계화의 흐름을 직시하면서 동북아를 비롯한 관련 당사국가들의 교회들과 긴밀한 교류와 협력을 통하여 통일시대의 동북아와 세계를 공동으로 만들어가는 비젼을 마련해야 하리라고 본다.
우리는 2010년 6월, 강대국에 둘러싸여 분단된 남쪽 땅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특별한 시간과 공간속에 살도록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사명을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발제자는 이미 한국 신학계를 대표하는 종교사회학자 중 한 분으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러한 명성에 걸맞게 발제자는 종교사회학적 입장에서 한국교회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그 명암과 더불어 대안까지 나름대로 잘 설명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부족한 사람의 기조 발제에 대하여 때로는 과분한 칭찬으로 격려해 주시고, 때로는 예리한 비판으로 문제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 주신 세 분께 감사드립니다. 사실상 오랜 세월 종교사회학적으로 한국교회를 연구해 온 학자로서 오늘날의 한국교회에 대하여 평가하고, 미래적인 희망을 말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본 글은 종교사회학의 대표적 학자인 이원규 교수의 생각이 집약된 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원규 교수는 한 신학교에서 종교사회학 교수로서 30년간 사역을 하였다. 신학교 안에서 사회과학인 종교사회학자로 이 사회와 교회를 보면서 그는 많은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
이원규 교수의 옥고와 그에 기초한 발제는 오늘날 한국교회를 아끼고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위기의식을 종교사회학이라는 사회과학적 관점에서 매우 예리하게 분석하고, 그 대안을 기독교 사회윤리학적 관점에서 제안한다.
오늘날 한국교회를 아끼고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다. 이것은 2천 년대에 와서 한국교회가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양적인 측면뿐만 아니라, 끝없이 그 위상이 추락하여 사회적 공신력을 상실했다는 질적인 측면에서 생겨나는 문제의식이라 할 수 있다.
두흐로 교수는 이 글을 통해, 종교개혁자들인 칼빈이나 루터가 초기 자본주의의 문제되는 테제들을 그대로 승인하고 있지 않음을 설명한다. 오히려 그들은 당시 새롭게 발흥하려는 자본주의적이며 제국주의적인 도시경제를 견제하는 발언들을 많이 하였으며, 그 내용들을 신학화하였음을 두흐로 교수는 언급하고 있다.
칼빈 탄생 500주년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칼빈의 가르침에 주목할 수 있도록 해 준 두크로브 교수께 감사를 드린다. 현 시대와 같이 경제위기, 특히 자본에 의한 위기를 맞이하게 된 때에 고전의 힘으로 경제를 다시 볼 수 있게 된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최근 있었던 두 가지 사건은 칼빈과 개혁주의 신앙이 역사 가운데서 그리고 현재의 자본주의의 현실 가운데서 감당했던 역할에 대한 모순적인 이해를 보여주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 저러 형태로 기본적인 복음 스토리를 알고 있었다. 전도는 일종의 변증을 제시하는 역할을 감당했다. 그러한 변증을 통해서 헌신을 압박했었다. 그러한 식의 변증적인 전도 방식은 사회가 전반적으로 기본적인 기독교 스토리를 이해했던 세계에서 통했던 방식이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450년을 격하고 있는 서로 다른 사회 시스템 속에서의 교회의 사회적인 봉사의 형태가 어떻게 나타나야 할 것이며, 이들을 뒷받침하는 신학이론이 어떻게 발달되었는지를 살피는 일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안인섭 교수와 이재천 목사의 개혁신앙의 전통과 오늘의 신앙고백의 글은 좋은 글로서 개혁신앙의 전통이 무엇인지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이 두 글은 모두 칼빈의 신학 및 신앙의 유산에 초점을 맞춘 글로 개혁신앙의 전통의 중요한 측면을 깊이 있게 논술하고 있는 귀중한 글이다.
한국은 현재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으며, 교회는 세속화된 현대 사회 속에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영적이면서도 포괄적인 칼빈의 교회와 국가 사상을 잘 파악하고 그 제언을 경청한다면, 한국 교회는 오늘날 이 교회가 감당해야 할 평화 통일을 위한 귀한 디아코니아의 사명을 감당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칼빈은 겸손한 사람이었다. 그는 임종을 앞두고, 자신을 공동묘지에 묻고 묘비도 세우지 말 것을 엄격하게 당부했다. 그는 자신의 묘가 추종자들에 의해서 일종의 성지처럼 여겨지기를 원하지 않았다. 영광을 받으실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기에 그랬다. 오늘날 그의 묘지 자리는 알려져 있지 않다.
전도서 12장 11절"지혜자들의 말씀들은 찌르는 채찍들 같고 회중의 스승들의 말씀들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가 주신 바이니라"순종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만 도무지 제가 설 자리가 아닌 것 같은 불편한 마음이 이 시간까지 제 마음에 있습니다. 제가 여러 목사님들 앞에서 설교를 하는 것은 제 생애에 있어서 첫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존경하는 여러 선배 목사님들이 많이 계신 이 자리에서 감히 무슨 설교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어떻게 이 시간을 감당할 수 있을까 기도하는 중에 성령께서 저에게 깨닫게 하시고, 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