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들어 두 번째 소록도 방문이지만신성교회 정오기도팀과의 만남은 처음이다.11시 45분. 할머니들이 다 모였다.겨울을 지내며 두 분이 입원하시고, 한 분은 몸이 불편한데도 기도회에 참석했다.모두 열 서너 분. 장인심 권사(80세)님이 기도회를 인도하고 내가 말씀을 전했다.소록도 정오기도팀 할머니들박정자 집사(78세)가 결석했다. 외부 병원에 입원했단다.불원간 하나님의 나라로 갈 것 같다는 그 분 간증을 작년 여름에 들었었다.평안북도 진남포가 고향이다.초등학생 때 발병해서 병원에서 격리되어 지내다가9살 되던 해에 원산 앞 바다 대도
순교자의 본을 받아 나의 믿음 지키고순교자의 신앙 따라 이 복음을 전하세불과 같은 성령이여 내 맘에 항상 계셔천국 가는 그 날까지 주여 지켜주옵소서안이숙의 신앙고백이 진하게 배인 자작곡 찬양이다.1945년, 8‧15해방의 기쁨은 잠시였다. 소련군의 야만적이고 잔인함에 치를 떨었다. 교회를 핍박하는 공산당은 적그리스도로 나타났다. 사람들이 38선을 넘어 남한으로 넘어왔다.안이숙 모녀도 38선을 넘어서 서울에 이르러 윤원삼 장로의 딸네 집에 머물렀지만 앞일이 막막했다.그녀의 글이다.“결혼하기도 어려웠다... 피가 부족하고 심
"여기 한 평생 짖다가 간똑똑한 바보가 묻혀있다"민족시인 故 서은 문병란 선생의 묘비이다.2015년 9월 25일, 세상을 떠났다.민족을 사랑하고 민족 분단, 국토 분단을 애통해 하며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꿈꾸며 독재 정권, 부패 정권을 질타한 그는5.18 광주민주화운동 때 심문과 협박을 받으며서도꿋꿋한 민주화의 열망을 외쳤다. 그의 한 부분이다....나를 사랑해다오, 길게 누워황토빛 대낮 속으로 잠기는앙상한 젖가슴 풀어 헤치고아름다운 주인의 손길 기다리는내 상처 받은 묵은 가슴 위에빛나는 희망의 씨앗을 심어다오!짚신
기습 한파입니다.호남과 충청도 서해안 지역에 눈폭탄이라네요.광주도 눈이 쌓였습니다.22일 금요일, 눈이 잠잠한 시간에 맞춰 소록도에 갔습니다. 거긴 눈이 없었고, 역시 따뜻하고 살기 좋은 환경인 것 같습니다.주민들에게 광주에서 준비한 떡을 전해드렸습니다.춥고 외로운 계절,하는 일 없이 집안에서 답답해하실 분들.교회가 나서서, 설 선물 겸 떡을 나눠드립니다.서울 광염교회 조현삼 목사님이매년 한 차례씩 이렇게 선물을 보내줍니다.금년에도 광염교회 성도들의 섬김과 나눔의 정성을 보내왔습니다. 그 때마다 심부름 맡은 나는 기쁘고 행복합니다.
광주의 금년 겨울은 퍽 따뜻했다. 연말에 첫눈이 내렸지만 금방 녹아버리고, 그 뒤로는 얼음도 못 본 것 같다. 상가에서는 겨울옷이나 난방기구가 안 팔려서 불경기란다. 그래도 겨울은 겨울이다. 추위가 갑자기 몰려왔다. 1월19일에 이어 20일도 눈이 쌓였다. 큰‘大’에 찰‘寒’, 대한(21일) 몫을 하고 지나간다.소록도에 1월19일에 가기로 했다가 눈 때문에 22일로 연기했다. 바닷바람 불어오는 한 겨울, 별일 없이 집에 들어앉아 답답하게 지내고 있을 한센인 가족들. 그들을 찾아가서 맛좋고 따뜻한 떡을 나누어드리고 싶었다. 설이 아직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이 못 보는 신령한 세계를 볼 수 있는 영안靈眼이 있다. 8·15 조국광복으로 출옥한 옥중성도였던 안이숙에게 이런 신령한 눈이 있었던 것 같다.1946년, 출옥 이듬해 어느 봄날이었다.6년만에 다시 맞는 봄이건만 안이숙의 심령은 무엇엔가 짓눌리듯 답답했다. “이것이 웬일일까요? 대자연은 수심에 잠기고, 벚꽃은 웃는 게 아니라 울고들 있는 것 같으니 말입니다... 대자연은 우리 앞에 다시 큰 고난이 올 것을 알아서 우리에게 그 무엇을 알려주느라고, 또 우리와 다시 이별할 것을 슬피 울어 보이는 것일까?“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군부독재에 맞서 일어났다가계엄군 총검에피흘려 숨진 민주 영령들.여기 서면빚진 자의 얼굴은 한 없이 부끄럽다.금남로 상무관에서 만났던주검 주검들.성한 몸이 하나나 있던가머리 터지고 얼굴 상하고찔리고 짓밟혔던아! 잔인해라 군부독재의 탐욕과 야만.그날 함성이 여기 묻혔다.성난 파도 데모 대열이,용광로로 들끓던 민주 열망이,자식들 죽는 것 보고만 있을 수 없다며분노와 눈물로 나섰던 시민이,박수치며 김밥 나눠주던 어머니의 사랑이.나라가 왜 이 모양일까?무등이 침묵하기엔 기다리기엔답답하다 캄캄한 터널이 너무 길다.'부들부
목마른 사슴들이 여기 있습니다.외로운 섬 소록도 사람들.서러움과 눈물과 한숨이 소리없이 흐르던 이곳에도 예수 나심을 선포하는 탄일종이 울립니다.오전 8시 40분, 중앙교회 예배당.9시 예배를 위해서 모두 모였습니다.중앙교회, 북성교회, 남성교회, 동성교회, 신성교회 성도들이.밝고 따뜻한 아침 햇살이 창너머로 비쳐서 예배당 안을 포근하게 합니다.9시 예배를 드리기 위해 들어선 예배당에는 이미 교인들이 다 나오셨습니다.자리가 다 차고, 찬양대도 자리를 잡았습니다.찬양 인도자 없이도 회중은 누군가의 선창에 따라 찬송을 올립니다."...
자신을 ‘실격한 순교자’라 말하는안이숙의 『죽으면 죽으리라』를 읽으면 구구절절이 큰 감동이다.. 8·15 해방과 출옥성도들 이야기는 은혜충만이다. 하나님의 교회를 모질게도 핍박하던 일본은 결국 불심판을 받은 것 아니었던가!1945년 8월15일.일본은 하나님이 내리는 불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 외쳤던 안이숙은 조국 해방에 깜짝 놀랐다.한 간수가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일본이 항복을 했대요. 그것이 정말일까요? 일본은 미국에 항복하고 조선은 독립국가가 된대요. 천황폐하가 친히 일본의 항복을 방송했대요.” 하고 말했다. 간수들이 지키던
아침 9시. 동산교회를 출발해서 소록도남성교회로 향한다.당회장 이한석 목사님과 한나여전도회장 최정례 권사 그리고 몇 사람.매년 김장 때마다 소록도 형제들에게 나눠줄 김장김치를 갖고 간다. 매 분기 한 차례씩 김치를 배달하지만 가을에는 이렇게 김장김치 맛을 보는 것이다. 소록도 형제들은 김장을 하지 않는다. 시장도 없고, 손도 불편하다. 병원에서 한 주간에 한 차례씩 나누어 주는 부식으로 식생활을 한다.그런 그들에게 김장김치는 누가 말한 것처럼 보약중의 보약이다. 그런 사정을 잘 아는 동산교회 한나여전도회원들은 남성교회 김치 배달을
‘내일 일은 난 몰라요 장래 일도 몰라요 아버지여 날 붙드사 평탄한 길 주옵소서’안이숙의 순교정신이 스며있는 이 노래는 고령의 성도들에게 언제나 눈물이고 감동이다.“나는 자격 부족으로 실격된 순교자다. 진실로 나는 내 주님 예수를 위해 죽기를 결심하고 나섰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기회를 잃었을 때에 섭섭해서 몹시 울었다. 그러나 나는 이제 이 작은 기록을 보내면서 위로를 받는다. 이 책은 내가 사랑하는 내 주 예수님 앞에 드리는 내 사랑의 선물인 까닭이다.” 안이숙이 자서진 『죽으면 죽으리라』서문을 이렇게 썼
며칠 전, 동산교회 장로장립예배에 이한석 목사는 임직 자들에게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말씀이 새겨진 기념패를 주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를 위해 충성하라는 권고이다. 아울러 믿음의 선진들 이야기도 좋은 교훈이다. 나는 교회를 다니며 선진들의 미담을 소개한다. 거룩한 감동이고 역동적 도전이기 때문이다.안이숙(1908-1997.10) 선생 이야기이다.자신의 일사각오一死覺悟 순교신앙과 옥중생활을 간증한 자서전 『죽으면 죽으리라』에, 암송했던 성경말씀과 찬송으로 믿음을 지켰고, 견디기 어려운
믿는 자들이 때로는 믿음 때문에 환란을 겪지만 결코 파탄으로 끝나지 않는다.불같은 시련에도 소망 중에 인내하며 기도하고, 험산준령도 찬송하며 걷는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이다.일제 때, 신사참배와 천황숭배는 십계명을 범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이를 단호하게 거부했다. 절대권력 앞에 고통을 당하고 심지어 생명을 내놓아야 했다.안이숙(1908-1997.10) 이야기다.미혼이었던 안이숙은 일본에서 학교를 나온 후에, 대구여고보를 거쳐 보성여학교(평북 선천) 교사로 있었다. 그 때,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형사들에게 쫓기면서 만났던
신앙생활이 자유로운 때가 있지만 어떤 때는 권력이나 어떤 세력의 반대로 어려움을 당하기도 한다. 한국 교회는 1880년대에 처음으로 선교사들이 들어와 복음을 전했고, 그렇게 세워진 교회들은 나라를 강탈한 일본에 의해 모진 탄압을 받았다. 그 때, 성경대로 믿음을 지키던 성도들은 순교의 제물이 되었다.그렇게 믿음을 지켰던 성도들 이야기다.많은 교인들이 일본의 강요를 거부하고 신사참배와 천황숭배를 거절했다. 그 일로 감옥에 갇힌 여자들까지도 고문을 당하고 고통을 당했다.조수옥 권사의 간증이다.평양형무소 여자감방 3곳은 기독교 신자들이
주민초청 복음축제.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한다. 2015년 11월 15일.주님의교회(고경태 목사-광주광역시 북구 석곡동) 주민초청 주일이다.금년까지 9년째 행사이다. 광주광역시에 속하지만 5·18 국립묘지로 가는 길, 무등산 아래 농촌이다. 2005년에 시내에서 교회를 개척했고, 얼마 후에 현재 위치로 옮겨 예배당을 건축했다.이제 예수 믿는 초신자들이 대부분인 주님의교회는, 그만큼 교역자의 짐이 무거운 것 같다.요즘처럼 전도하기 어려운 때에 어떻게든 주민들로 하여금 복음을 듣고 교회에 나오게 하기 위해기도하며 애쓰고 있는 것이다
‘내 집보다 ’하나님의 집‘ 예배당을 먼저 건축해야 합니다.’ 이런 믿음으로 살았던 성도들이 있었다. 삼천리반도 방방곡곡, 섬마을 점점이 세워진 교회의 역사를 들추어보면, 이런 미담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인다. 북쪽의 만주 땅 까지도.효암曉岩 백남조白南朝 장로((1913.-1988. 부산부전교회). 그도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 예배당 건축을 위해 집을 팔기로 작정했었다. 다행히 집을 팔지 않고도 헌금을 드렸다. 그 때 그 일이 삶의 전환점이 되었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던 것이다.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순결한 믿음을 지켰던 그는 195
“내 집보다 먼저 우리 교회 예배당을 건축해야 합니다.” 이렇게 헌금하여 살았던 성도들이 있었다. 삼천리반도 금수강산 방방곡곡에 세워진 교회들 미담이다. 우리 민족, 내 자손들이 예수 안에서 사는 것, 그것을 복으로 생각했던 것이다.백남조 장로님(1913.-1988. 부산부전교회) 이야기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숙모가 준 성경을 읽었다. 사람에게 의식
‘백배나 얻었고...’ 하면, 흉년에 농사 지어 백배의 결실을 거두고,마침내 창대하과 왕성하여 거부가 되었던 이삭이 생각난다. 아브라함의 독자였던 이삭이, 어려운 일들을 겪으면서도 믿음으로 행한 후에 농사를 지었는데 백배를 수확했던 것이다. 하나님이 베푸신 풍족함이었다. 성도들이 범사에 이같이 형통함으로 이웃과 더불어 섬기고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한국 교회는 일찍부터 복음 전파와 함께 예수 사랑으로 섬김과 나눔에 관심을 가졌다.평양 장대현교회가 숭실대학 설립 기금을 헌금했던 이야기다. 장대현교회는 역사적으로 한국교회의 중심 역할을
주일예배에 나온 교인이 딱 노인 한 분이다.그래도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를 해야 하는가. 몇 백 명 모이는 도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던 나는 당황했다. 한 순간,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씀에 떠밀려 강단에 올라갔다. “오늘은 우리 둘이 예배드립시다. 정성을 다합시다.” 하고는 큰 소리로 기도하고 찬송했다. 설교는 수백 명 회중이라도 다 듣도록 힘주어 외쳤다. 어쩐지, 마음이 뜨거웠던 주일예배였다.신학생 시절이었다.광주 가까운 농촌교회, 교회 형편이 어려워서 문을 닫으려 했고, 교역자는 후임도 세우지 않고 떠나버렸다. 3개
성경이 사람을 살린다.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가 영혼을 구원한다. 낙망했던 사람이 소망을 찾고, 방황하는 자가 빛을 발견하고, 죄악에 빠진 자가 회개하고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진리 안에서 형통하고 평탄케 하는 복음이다. 신기하고 놀라운 능력이고 ‘아멘!’ 이다.밤새워 성경을 읽기도하고, 신구약을 연이어 통독하기도 한다. 정성들여 한 글자 한 글자 필사를 하면서 구구절절의 뜻을 음미하고 묵상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면서 기적을 체험하고, 감격과 감동과 감사가 넘치는 행복한 성도들이 있다.한국 교회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