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할리우드에서 시작된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 바람이 태평양을 건너 우리 나라에서도 꽃 피어 열매 맺는 형국이다. 한국뿐 아니라 지구촌을 향해 가속도가 붙고 있다. 권위적인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여성 동등권의 사회로 나아가는 또 다른 신호탄으로 모두가 받아들인다. 권력지향적 사회에서 평화지향적 공존의 새 시대가 열리는 데 대한 기대로 한껏 부풀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미투 운동에서 은혜로우시지만 동시에 공의로운 하나님의 손길을 읽는다. 부디 미투 운동과 위드 유(#With You) 운동을 통해 참된 상생과 공존의
내 고향은 충청도가 아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대전에서 목회한 지 어언 23년이 되었다. 대전이 ‘제2의 고향’이 된 셈이다. 새롭게 자리 잡은 터전의 인문학적 배경과 지정학적 사연에 관심을 쏟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어느 해 전북 무주를 들렀다 오는 길에 무주 제1경(景) 나제통문(羅濟通門)을 방문했다. 무주군 설천면과 무풍면 사이 석모산을 뚫어 건축된 암석 터널이다. 이 굴은 삼국시대 백제와 신라의 국경 출입소로 알려져 왔다. 그 아래 흐르는 설천과 높이 50m 정도의 낮고 기다란 석모산 줄기는 이쪽과 저쪽을
필자는 1980년 ‘민주화의 봄’ 직후에 잠시나마 시위와 최루탄을 온몸으로 체험했다. 실화에 근거한 영화 은 너무나 실감났다. 이 영화에서는 1987년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부터 그해 6월 이한열 최루탄사망 및 민주항쟁 사건까지 많은 영웅들이 등장한다. 사망한 열사들, 최환 검사, 신문기자, 교도소직원, 대학생들, 민주화운동가, 종교인, 100만 시민들이 그 주인공들이다. 범죄단체같은 권력자들이 진실을 은폐하고 조작했으나, 우리의 영웅들은 불의를 무너뜨리고 민주화의 기반을 만들었다.역시 실화에 근거한 영화
게임중독으로 폐쇄 병동에 입원했던 고등학생이 고의로 불을 지른 뒤 도주했다가 경찰에 붙잡히는 사건이 최근 발생했다. 그 학생은 화재경보가 울리면 스프링클러가 작동하면서 동시에 문이 열린다는 사실을 간파하고 있었다.그는 환자복 차림으로 병원을 탈출해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서 사복으로 갈아입은 뒤, 집 근처 PC방에서 게임을 하다 1시간 만에 경찰에 붙잡히는 신세가 됐다. 이미 그 학생은 게임중독으로 몇 차례 입원한 경력이 있었다. 꿈을 키우며 역동적으로 살아야 할 청소년이 게임중독이라는 괴물에 사로잡혀 족쇄가 채워져 삶의 낭떠러지로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 전체가 회개와 변화의 다짐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500주년 기념일인 2017년 10월 31일을 전후로 총회에서는 총신대학교 총장 주연과 재단이사들의 조연으로 막장 드라마가 진행됐다.제102회 익산 총회를 이틀 앞둔 9월 15일, 재단이사회는 교단 직영신학교인 총신대학교의 정관을 몰래 개정했다. 그로부터 한 달 후인 10월 26일, 그들은 화해 분위기에 앞장을 섰던 재단이사장 대행 김승동 목사를 전격 아웃시켰다. 그리고 전국 교회가 잘 알지도 못하는 박재선 목사라는 분을 이사장으로 선출하
2017년 한국교회, 파국을 눈앞에 둔 느낌입니다.목사가 된 후에는 늘 부끄러움을 갖고 한 해를 마감해 온 것 같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게 습관이 되었습니다. 2017년은 기대도 많았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며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한목협)도 2016년부터 열심히 준비하며 기다렸습니다. 수차례의 세미나를 열고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수렴하느라 애를 썼습니다. 개신교회 모두가 하나 되는 연합과 일치의 꿈을 이루어보기를 힘썼지만 별무소용이었습니다. 복음의 본질, 교회의 본래적 모습을 찾아야 한다는 데 공감은 했지만
신호등 너머 사거리 광장에 성탄절을 알리는 캐럴이 흘러나오고 트리 위를 장식한 큰 별이 반짝거리고 있다. 공교롭게도 쿵소리와 함께 화물차가 하늘을 보고 누워있고 실려있던 컨테이너가 나뒹굴면서 신호등마저 애처롭게 대롱대며 불빛을 껌뻑거리고 있다. 이윽고 싸이렌 소리가 주위에 울려 퍼지며, 교묘하게 신호등과 트리의 별빛이 겹쳐 보인다. 마치 부조화 속의 조화라고나 할까?동쪽에서 서쪽으로 동방박사들의 발걸음을 이끌고 있는 하늘 위의 작은 별빛과, 그리고 오랫동안 이스라엘이 소망해 왔지만 그 색이 퇴색되어져 버린 다윗의 별빛이 서로 교차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목사는 교회를 허무는 죄를 저지른다. 그래서 출애굽기에 리더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를 뽑아야 한다고 했다. 아무리 유능해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교회를 무너뜨리는 파괴자가 된다. 총신 사태를 보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목사의 폐해를 보고 있다. 증경총회장과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버린 진실하지 못한 목사, 그가 어떻게 한국교회 미래 지도자들을 이끌 수 있단 말인가? 신학도들은 그의 이름이 담긴 졸업장을 거부하고 있다. 오호 통재라! 117년의 역사를 가진 총신이 어찌하다가 이런 꼴이 되었는가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총신대 법인이사회가 총신대 정관에서 총신대 사유화의 걸림돌을 모두 없애버렸다. 법인이사회는 임원변경등기까지 마쳤다. 이로써 총신대 법인이사들은 탈총회와 탈교단에 필요한 법적 절차를 마쳤다. 법인이사들은 총회의 화합정신을 묵살했다. 이것은 총회와 본교단에 대한 단순한 으름장이 아니라, 총신대를 합법적으로(?) ‘강탈’하겠다고 선포한 거나 다름 없다.법인이사회는 통합교단의 장신대학교 법인정관이나 고신교단의 고려신학교 법인정관처럼 총회 직영, 정관 변경시 총회 인준, 재산 관리시 총회 인준, 임원 변경시 총회 인준
벌써 2년쯤 되었나요? 63빌딩 최상층의 레스토랑은 ‘금빛파사드’의 명물임에 분명했습니다. 점심, 간단한 메뉴였지만 전망과 분위기만으로도 흡족했습니다. 그날, 주고받았던 대화는 오직 총신 걱정이 전부였던 것,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사실, 총장님은 저에 대한 앙금이 있으실 겁니다. 수년 전 ‘제주총신’ 프로젝트가 야심차게 추진될 때, 실사팀 일원으로 몇 차례 제주캠퍼스를 방문하여 대학 측 및 시청 직원들과 면담을 갖고 저는 중·고등학생 감소에 따른 정부의 감축 로드맵과 매주 서울과 제주를 오가는 비용 등을 종합하여 ‘아니다’라고 판단
1517년 가을이었다. 독일에 있는 한 작은 마을 비텐베르크는 이제 겨울을 위한 준비에 들어가고 있었다. 그 마을에 있는 대학의 어떤 겸손한 젊은 학자는 속으로 질문을 하였다. “하나님의 자비를 얻는 방법은 무엇인가?” 이 문제를 가지고 깊이 씨름하면 할수록 자기가 사랑하는 교회에 대해 좌절과 분노가 더 쌓여만 갔다.이 젊은 수도승 루터는 교회에 대하여 반기를 들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자기 교회에서 목격하게 되는 잘못을 볼 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면죄부를 판매하는 교회를 향해, 과연 이런 행동이 성경에 근거한 바른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뜻 깊은 주간이다. 종교개혁은 교회의 심각한 변질에 대한 변화를 시도한 것이었다. 로버트 하퍼 목사는 이런 말을 했다. “변화를 거부하는 순간이 죽음이 시작되는 순간이다.”(The moment you refuse to change is the moment you begin to die.) 변화해야 할 때 변화하지 않으면 변질되고 죽음이 시작된다. 최근 수년간 우리는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종교개혁에 대한 신학적 의미를 충실히 연구하고 발표해 왔다. 그런데 이제는 연구와 발표를 넘어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목회자로서 부끄러운 말이지만, 살아가면서 돈의 위력을 느끼게 된다. 천박한 자본주의의 대사라고 욕했던 ‘돈만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어’라는 말의 현실성을 깨닫게 된다.일찍이 셰익스피어는 돈의 위력에 대해 깊이 생각한 것 같다. “세상은 돈만 있으면, 검은 것을 희게, 추한 것을 아름답게, 비천한 것도 고귀하게, 심지어는 악한 것도 선한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돈은 늙은이를 젊게 만들고, 문둥병도 사랑스러워 보이게 하고, 늙어가는 과부에게 젊은 청혼자를 데려올 수 있게 할 수 있다”고 했다.이 말들은 셰익스피어 시대보다
구약의 선지자들을 보라!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함으로 받는 핍박과 고통 그리고 죽음. 우리가 참된 목자상을 논하게 될 때 구약의 선지자상과 비교하는 것을 꺼려하지만 어찌보면 참된 목자는 세상에서도 저주받은 직책이라 보는 것이 성경의 정신으로 볼 때는 부합된다 할 것이다. 신앙적으로는 권위와 존경의 대상이었지만 그 삶의 실상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를 전달하는 입장에서 고통과 죽음을 받아들여야하는 참으로 기구한 운명의 삶을 타고난 자들이기 때문이다.오늘날 목회자는 구약시대와 다르다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시대가 변해도 이러한 맡은 자의
한국교회의 미래를 진단하는 여러 글들을 읽어보고, 세미나, 포럼 등 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앞날을 긍정적으로 예견하는 분들은 거의 없었다.그들의 부정적 예견에는 분명 일리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 이유는 가속되는 저출산과 그로 인한 인구 감소 때문이다. 또한 국민들의 의식 중 탈이념, 탈종교의 포스트모더니즘 가속, 그리고 교회에 대한 부정적 의식 확산 때문이다. 유독 기독교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을 위한 비판의 공격이 격렬한 일부 단체 및 개인의 집요한 활동도 원인 중에 하나임이 분명하다.이런 것들이
우리나라는 지난해 후반기부터 금년 5월 대통령 선거를 치르고, 새 대통령이 선출될 때까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소용돌이 속에서 지내왔다. 그동안 많은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화문으로 뛰어나와 정의를 외쳤고 태극기의 물결이 덕수궁 앞에서 출렁였던 어지러웠던 사태가 수습되어 이제 정국이 안정기에 접어든 느낌이다.병폐처럼 지속되고 있는 지역갈등과 여야의 기 싸움이, 그리고 빈부의 격차, 실업자의 증가, 세대간의 갈등 등 그 밖의 모든 사회적 문제들이 원만히 풀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반대를 위한 반대나, 대안 없는 무조건적인 반대로
제102회 총회임원과 총무와 상비부장 입후보자 등록이 마감됐다. 매 선거 때마다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공약(公約)들은 눈부실 만큼 화려하여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고, 총대 그룹들이 전국적으로 다양하게 모여 밀린 우정과 의리로 활기찬 결속을 다지는 모습은 생동감이 넘치는 분위기이다.입후보자들은 싫든 좋든 모임마다 찾아가야 하고 말 한마디 하지 못해도 머쓱한 미소로 인사만 하고 다른 모임 시간을 맞추기 위해 급하게 이동해야 한다. 공고 후 약 3개월 정도는 어디에 사진 한 장 내지도 못하고 언론에 이름도 OOO 식으로 밝혀야 하는 상황에
한국교회에 대한 개혁의 요구가 내외적으로 더욱 거세지고 있다. 이러한 점증되는 요구는 교회가 교회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음을 반영할 뿐 아니라 한국교회가 절망적인 상태로 치닫고 있음을 반증한다.개혁을 논하자면 어느 시대 어느 장소에서도 언급되지 않은 곳이 없었다. 물론 그러한 개혁의 발단은 언제나 시대변화와 정치지향적인 인간의 죄성에 기인한다. 그럼에도 의구심을 갖게 되는 것은 과연 교회가 잡고자 하는 개혁의 실체가 신앙의 본질과 관련되어 있는가 하는 것과 나아가 과연 한국교회가 현재의 개혁의 지표로 삼고 있는 것이 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문장 가운데 “준비하기를 실패하면 실패하기를 준비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준비만 잘 해도 이미 반은 성공한 것이다. 다음세대의 여름사역은 주님 오실 때까지 이루어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에 잘 해야지”라는 유혹은 성령이 주시는 음성이 아님이 분명하다. 지금 준비해야 한다. 늦지 않았다. 이 글을 읽고 난 다음 담임목사가 해야 될 일은 “우리 교역자들이 잘 준비하고 있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을 접고 곧바로 교역자들을 소집하여 어떻게 준비되고 있는지를 직접 보고 받고 점검하는 것이다. 주일학교 사역자들도
목회는 릴레이, 이어달리는 계주이다.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기간을 달리다가 후임자에게 사역을 넘겨주는 것이 목회이다. 계주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내가 달려야 할 코스를 최선을 다해 역주하고, 다음 선수에게 바통을 잘 넘겨주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바통 터치, 또는 바통 패스라고 한다. 수 년 전, 미국 육상팀은 올림픽 400미터 계주에서 바통 터치에 실패해 메달권 밖으로 밀려났다. 아무리 유능한 선수들로 구성되어도 바통을 넘겨주는 일에 실패한다면 그 유능함이 발휘될 수 없다.목회에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 아주 탁월한 원로목사와 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