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사회의 통일논의 변화과정과 한국교회분단이후 한국정부의 통일논의는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1950년 6·25 이후 20여 년 동안은 남과 북이 적대적 관계에서 남측은 북진통일을 북측은 적화통일론을 일관되게 추진했다. 이때는 남쪽에서도 평화통일을 논하는 것 자체가 금기였고 위법이었다. 무엇보다도 정서적으로 용납이 안됐다. 박정희 정권은 1972년 국가간 비상채널을 통해 7·4성명을 이끌어낸다. 7·4성명은 그 내용의 파격성세도 불구하고 남북양측의 진실성 결여 때문에 민족사적 의미를 평가받지 못했다. 7·4성명 이후 북측은 주체
A. 들어가는 말교회는 세상 속에 있으며 사회로부터 누리는 혜택만큼 세상을 섬겨야 하는 책임이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우울하게도 하며 때로는 절망하게 하는 일들이 있다.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북의 대립과 갈등의 심화.대한민국 내의 지역간.계층간.세대간 갈등과 경제적 위기와 양극화 현상, 거기에 더하여 극도의 개인 이기주의와 도덕 불감증에 수반되는 가치관의 상실 등은 위기라고 할 만하다. 교회가 해야할 일은 이를 치료하고 꿰매고 지향할 가치를 창출하고 든든한 사회기반 구축의 역할 감당일
1. 교회 위기의 사회적 배경1958년생, 1959년생을 정점으로 하는 베이비붐 세대(1955~1963)가 주일학교와 중고등부 학생회로 밀려들던 1970년대 초반부터 한국 교회는 양적 부흥기를 맞는다. 이후 1990년대로 접어들어 1950년대 후반의 베이비붐 세대와 1970년 대 초반의 인구증가분이 성인이 되면서 교회 주일학교.학생회가 침체기로 접어들기 시작하고 교회학교의 침체가 대학.청년회로 옮겨지면서 교회에 청년이 없다는 문제의식이 싹트기 시작했다.그럼에도 한국 교회는 새로운 성인 신도가 계속 유입되고 교회 규모가 유지되는 것에
열린대화마당의 논찬자로 부름받게 된 것을 감사하게 됩니다. 열린대화마당이 기획된 본래의 의도가 세월호 참사로 새로운 차원을 부여받게 되었습니다. 논찬자가 이 자리에 부름받게 된 것은 한목협이 한국교회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위해서 노력해 왔던 시기에 한목협의 상임총무로 섬겼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두 분의 발제자는 이구동성으로 한국교회는 위기에 직면해 있음을 강조하면서 그 위기가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어 있는가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한 분은 신학적이고 종교사회적인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고 다른 한
오늘날 한국교회는 위기에 처해 있으며, 그 위기의 본질은 사회로부터의 단절과 신뢰의 상실이 가장 치명적이라는 발제자의 지적에 충분히 공감한다. 그리고 기독교의 필요와 교회의 필요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필요를 채우는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것이 교회 쇄신의 1차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란 제안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러나 그런 방향제시에 걸맞는 구체적이고 뚜렷한 대안은 중지를 모아 더 논의해봐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발제자들의 지적대로, 오늘날 한국교회의 위기는 △ 교회가 물질적 성장주의에 빠져 공동체적 삶에 무관심한
세월호의 참사로 말미암아 느끼고 있는 피해 가족의 고통은 필설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이다. 이 사건이 발생한지 벌써 한 달이 지났지만 아직도 해결되지 않았고, 온 국민들은 남의 일이 아니라 마치 자신의 일처럼 모두 가슴 아파하며 진행되는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앞선 발제자들을 통해서 세월호 참사로 말미암아 아파하고 분노하고 허탈해하는 이 백성들의 마음을 ‘정신의학적인 관점’과 ‘상담학적인 관점’에서 어떻게 어루만져야 할 것인지에 대해 들었다. 그리고 이제 ‘강단 설교의 관점에서’라는 마지막 세션(session)을 통해 세
버트란트 럿셀의 라는 저서에서 물리적인 힘과 경제력과 영향력(도덕적 능력)을 이야기하였다. 일차적으로는 물리적인 힘(군사력)이 제일 강하게 작용하고, 이차적으로는 경제의 힘이 강하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도덕적 능력이 가장 강하다고 했다. 최후의 승리는 도덕적 승리에 달려있다.그런 의미에서 핵을 들고 설쳐대는 북한이나, 부정직한 역사관을 가진 일본이나, 경제의 힘으로 세계를 지배해 보려고 발돋움하는 중국도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대전의 전범국가인 독일은 철저히 참회하고 진실과 정직으로 높은
지금부터 129년 전, 가난과 무지와 미신으로 어둠 속에 있었던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근대화가 진행되고, 발전을 거듭하여 오늘날 경제대국이 되었으니 하나님의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기독교 대국이 되어 세계 교회가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약 130여년의 기독교 역사에 이런 엄청난 교세를 형성하고, 많은 선교사를 세계 각국에 파송하는 선교대국이 되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그러나 한국교회는 1990년대를 정점으로 교회성장이 정체되더니 그 후 교인감소현상이 진행되고 있어 지각 있는 교회 지도자들은 우려
오늘날 한국교회는 복음전도보다 윤리운동을 먼저 해야 할 상황이다. 약 100년 전 부크만(Frank Buchman, 1878-1961) 목사가 일으켰던 도덕재무장운동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간절한 요망일 뿐 아니라 교회적 사회적 요청이다. 이는 윤리가 기독교신앙의 주된 목적은 아니라 할지라도 한국교회는 기독인들, 특히 목사들의 추락한 윤리생활로 인해 복음전도의 문이 닫히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목사로부터 말을 듣기보다 말하는 사람의 인격과 삶을 보기 원한다. 특히 현대는 비주얼 시대여서 보이는 것이 없으면 신뢰하지
영성을 신앙의 본질이라고 보고 윤리적 삶을 그 본질에서 나오는 외연의 활동이라고 본다면 이 주제는 교회사에서 아주 오래된 것입니다. 저 유명한 신앙과 행위의 문제입니다. 특히 종교개혁과 연관돼 있는 이 주제는 칭의와 성화, 믿음과 윤리, 신앙과 정치 등 여러 가지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이 주제는 한국 교회의 상황에서 이른바 보수와 진보의 문제와도 연관됩니다. 한국 교회 안에서 보수적인 쪽이 믿음을 많이 강조해 왔다면 진보적인 쪽에서는 행동을 많이 강조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한국 교회의 윤리적 삶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누구나 인
1. 서론2013년 12월 김정은에 의한 갑작스런 장성택 처형은 한국은 물론 국제사회를 충격에 빠뜨리기에 충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장성택은 김정은 정권의 명실상부한 2인자였다는 점을 차치하고라도 김정은을 어려서부터 돌봐주고 키워준 고모부인데다 김정은이 권력을 차지하는데 그 누구보다도 결정적 기여를 한 일등공신이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가족과 같은 인물을 가장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전광석화같이 신속하게 숙청했기 때문이다.숙청은 사실 독재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극단적인 정치행위라고 말할수 있다. 북한에서 정치적 반대파 제거를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정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이 발생했다. 북한 2인자 장성택이 숙청(2013.12.8)된지 나흘 만에 전격 처형(12.12)되었다. 왜, 누가, 어떻게 죽였는지, 북한은 어떤 상황이고, 김정은정권은 어떻게 될 것인지 각종 루머들이 난무하였다. 남북통일은 언제 될지,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관련해서도 도하 신문에 다양한 주장들이 제시되었다. 그만큼 김정은정권의 붕괴와 대남도발 가능성이 우려되기 때문일 터이다. 게다가 갑오(甲午)년을 맞이하여 제2의 구한말을 연상시키는 상황도 그 배경이 될 수
한국 사회와 교회에는 갈등이 많다. 갈등이 있다는 것은 그 해결을 구하게 만든다. 갈등이 있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고 갈등의 해결책이 없는 것이 문제다. 근본적으로 보면 어떤 문제든지 거기엔 해결 방법이 있다. 다만 해결책을 찾지 못하든지, 찾아도 실천하지 못할 뿐이다.이 발제는 한국 사회와 교회의 갈등과 그 해결에 대한 기독교적인 한 관점이다. (1) 먼저는 신학적인 근거를 제시하고, (2) 다음으로 갈등의 해결에 대한 세 단계를 살핀다. (3)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오늘날의 한국 교회의 갈등에 연관된 구체적인 한 시각 곧 가설
1. 머리에한국 교회가 오늘날처럼 수모를 겪게 된 시대는 없었다. 별별 이름을 붙여 교회와 기독교를 비하하는가 하면 목회자를 희화하는 데 모두가 익숙하게 되었을 정도이다. 이 모든 것은 넉넉히 이해할만 하다. 교회와 목사가 부리는 추태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서서 교회가 잘하고 있는 것이 많은데 대중매체에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볼멘소리로 아무리 대응해봐야 역효과만 나온다. 이것은 여러 사회 조사의 결과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그리하여 뜻있는 이들은 이와 같은 조사가 나올 때마다 교회의 각성과 반
1. 머리말늙은 호박, 안개 속을 움직이는 연료가 떨어진 자동차, 초점이 맞지 않는 수십 개의 렌즈, 초식공룡, 흐린 가을 하늘, 빠른 속도로 추락하고 있는 비행기, 치료법이 개발되지 않은 난치병 환자. 이것들은 크리스천 여론선도층 심층면접조사 결과 그들이 평가하는 한국교회 연상 이미지들이다. 그들은 한국교회가 한국 사회와 국민의 신뢰를 잃어 오히려 세상이 걱정해주는 지경에 이르렀고, 이에 따라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기를 맞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것이 그들만의 생각일까? 한국교회에 대한 위기의식은 대부분의 목회자와 평신도들도 공감하
I. 서론적 논거저는 오늘 하나의 ‘고전’(classic)에서 주제의 실마리를 찾고자 합니다. l955년 출판된 작은 책하나가 당시 미국종교계를 크게 뒤흔들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책명은 "Protestant, Catholic, Jew", 저자는 Will Herberg, 그는 유대인이면서 Drew 대학교 교수였습니다. "Turn to religion", '종교로 회귀하는 시대'라는 서두에서 Herberg은 놀라운 통계 하나를 소개합니다."1950년 당시 미국인의 95%가 종교인이었다. 그중에 개신교인이 68%, 가톨릭인이
본문: 마태복음 17장 1~20절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에 하신 일들을 전체적으로 보면 초기에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만한 일들을 많이 하셨습니다. 병도 고치고, 특별한 기적도 행하시고, 또 귀신을 쫓아내시기도 하시고, 당시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들을 수 없었던 새로운 주제를 당당하게 선포하시는 주님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가시는 곳마다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이런 분을 스승으로 모시고 함께 했던 제자들에게 주님은 자랑거리요 대단한 자부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이름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관심
선거의 해를 맞이하여 한국 교회는 그 어느 때보다도 교회와 정치의 관계에 예민해 있다. 과거에 비하면 많은 변화임에 틀림없다. 20년 전만 해도 대부분의 교회는 정치사회적인 이슈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3.1운동의 실패이후 견고한 현실정치의 벽을 실감한 교회는 내세화, 내면화되었고, 이것이 선교사들을 통해 전수된 정교분리이론과 맞아떨어지면서, 점차로 사회 구조적인 문제는 믿음의 영역에서 제외되었다.이러한 한국 교회의 정치적 태도는 두 차례 진보정권을 거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오랜 세월 정교분리의 기치아래 명분상으로는
이 양대 선거는 우리나라의 국운을 결정할 수 있을 만큼의 큰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본다. 특히 우리 한국 교회가 정치 무대로 파송한 대표 선수랄 수 있는 세 번째의 장로출신 대통령이 집권한 지난 4년간의 모습에 대한 국민적 평가가 매우 부끄럽고 실망스러운 면을 많이 담고 있기에, 이번 선거를 맞이하는 우리 한국 교회의 처신이 매우 조심스럽기 짝이 없다.
지금과 같은 축복된 정치적 자유와 민주적 여건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보다 조심스럽게 정치적 숙고의 길을 열고, 기독교적 가치의 관점에서의 비판과 참여의 요구에 능동적으로 응답하는, 실천적 덕을 갖춘 시민이 되어야 할 책무가 부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