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우리 곁에 있어야 한다’며 붙잡던 소록도교회에서 전도사 생활을 하고,은퇴 후에도 교인들 정오기도회를 회복하여 인도하는 사람이 있다. 나이 80 다 된 천우열 전도사이다. 이유가 있다. 소록도 가족과 같은 형편에 애환을 함께 해온 분이다. 그가 성도들의 생각하며 지은 노래가 ‘찌라도 하나님’이다. 구구절절이 사실은 자신의 애환이고 기도인 것 같다.‘환란과 핍박이 파도처럼 밀려도, 담대하게 기도하라 당부하신 그 말씀, 눈물의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 순교자의 신앙 따라 주 의지하리라 찌라도 후에는 면류관 주시리라 찌라도 하나님
한센인은 결혼을 할 수 없는가?아니다. 원치 않은 병이 들었을 뿐 남자는 남자, 여자는 여자이다. 사랑하고, 연애하고, 결혼해서 자식을 낳고 가문을 잇는데 무슨 차별이 있겠는가.장인심 권사(79세)에게서 10여 년 전에 별세한 남편 이야기를 들었다. “김 집사님이 75세에 세상을 떠났으니 함께 오래 살았지요. 그때 내가 60이 넘었어도 많이 울었어요. 사실은 다른 분들이 부부가 사별을 해도 위로할 줄 몰랐지요. 그 뒤로 그분들을 찾아가서 ‘이렇게 마음이 아픈 줄 몰랐다’고 뒤늦은 위로를 드렸지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닦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피 묻은 손으로 세상에서 가장 추한 손을 잡아주는 곳,그곳이 한센인들의 교회이다. 고칠 수 없었던 몹쓸 병으로 신경 손상을 입어 몸이 굳어지고, 손가락과 발가락이 끊어지고, 심하면 팔다리를 자르고, 중도에 시력을 잃기도 했다. 후유증으로 엄청난 장애가 남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몸을 어루만지시고, 기도하는 손을 잡아주시는 것이다. 소록도 사람들은 그 사랑으로 살았고 또 살아가는 것이다.신성교회 정오기도팀과 몇 년을 만나면서 시 한 편을 썼다. “예배당 종소리 섧이 우는 소록도/ 구부정 지팡이 짚은 할머
세상 사람들이 전설의 땅처럼 이상한 사람들이 살고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어떤 사람들은 천형天刑의 섬이라 말하기도 하는 남도 땅 남해안의 작은 섬 소록도, 한센인으로 한 번 들어가면 다시는 나오지 못하고 그곳에서 죽는다고 알고 있었다.그래서 한하운의 시 은 슬프기만 했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고/ 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 가는 길.../
소록도 시인 강창석의 ⌜긴 세월」 이다.새털구름처럼 흐르다/ 세상살이에 채이고/ 얄궂은 이에게도 쫓겼었다// 인파를 헤집고 움츠려 찾아온 곳/ 망가진 몰골 쳐다보는 이 없어 좋다만/ 고향 그리워 향수에 젖어본다// 변화의 길목에 서서 슬픔을 거두고/ 원하던 세상 손잡아주는 이와/ 아름다운 영혼을 나누며 비상하리라//얼굴이 이상하다며 쳐다보는 이가 없어서 마음이 편했다는 말이 있다. 소록도가 그렇다. 그는 대한민국 군인으로 병역의무를 반듯이 마쳤지만 한센병을 늦게 발견해서 치료시기를 놓쳤다. 소록도 역시 사람 사는 세상이었
‘인명재천人名在天’이라 한다. 생명의 길고 짧음이 하늘의 뜻이라는 것이다.신자도 그렇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자기 백성 삼으려 작정하시면 그 일을 이루기까지 어떤 환경도 생명을 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한 사람이 장인심 권사이다.소록도에 갈 때면 집으로 찾아가거나 정오기도회 시간에 맞춰 예배당에서 만나는 할머니 장인심 권사(81세. 신성교회)도 그런 분이다. 1952년, 6 25전쟁이 한창이던 해 여름. 녹동에서 조그만 목선을 타고 소록도에 들어와서 갇힌 듯, 묶인 듯 60년 넘게 살았다. 고향이 바다 건너 지척이라서 그곳을 바라
목포는 ‘눈물’이다. 세월호가 맹골 수로에서 침몰((1014. 4. 16)한지 1073일 만에 인양되어 목포 신항으로 돌아왔다. 미수습자 가족들과 전국에서 추모객이 몰려오면서 모두가 분노와 애간장 끓는 슬픔과 눈물이 부두를 적시고 있는 것이다. 봄 축제가 취소되고 거리마다 노란 추모 현수막과 추모 리본이 걸리고 빗물처럼 비 내리는 곳이 항구 목포이다.‘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며/ 삼학도 파도 깊이 숨어드는데/ 부두에 새악시 아롱 젖은 옷자락...’이난영이 애절하게 불렀던 '목포의 눈물’이다. 깊은 한을 술술 풀어내듯 불렀던 이
믿는 자에게는 다른 사람이 못보고 못 느끼는 신령한 세계를 보는 영안靈眼이 있다.8‧15 조국광복으로 출옥한 옥중성도였던 안이숙에게 이런 신령한 눈이 있었던 것 같다.1946년. 출옥 이듬해 어느 봄날이었다.6년 만에 다시 맞는 봄이건만 안이숙의 심령은 무엇엔가 짓눌리듯 답답했다. “이것이 웬일일까요? 대자연은 수심에 잠기고, 벚꽃은 웃는 게 아니라 울고들 있는 것 같으니 말입니다... 대자연은 우리 앞에 다시 큰 고난이 올 것을 알아서 우리에게 그 무엇을 알려주느라고, 또 우리와 다시 이별할 것을 슬피 울어 보이는 것일
목포에서 홍도 가는 여객선을 타면 중간에 흑산도에 내린다. 지금은 2시간이면 갈 수 있지만 장기실 전도사는 6시간이나 걸렸던 먼 뱃길이었다. 흑산도 예리 항구로 들어가면서 건너편을 보면 대둔도가 보인다.흑산도에서 작은 배로 30여 분. 가두리 양식장 사이로 열려진 뱃길 따라 대둔도 도목리에 도착하고, 동네에 들어서니 낮은 담 너머로 이웃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한 가족처럼 살아가는 것 같다. 주민 열중에 아홉은 교인이란다.장기실 전도사가 교회를 개척했을 때부터 교회에 나와 장로가 된 김양선 장로를 만났다.그가 처음 출석했던 때는 나이
강촌 사람들여울에 놓인 징검다리 건너차 다니는 신작로에 나서고섬마을 사람들썰물 바다 물 빠지면육지 나가는 뻘밭 노둣돌 건넌다학교 앞 냇고랑큰물 져 돌다리 떠내려갔던 날등에 업혀 건넜던 누님 생각난다지나온 인생 여정에딛고 오른 디딤돌길 열어준 징검돌 노둣돌 같은 사랑받았으니어설픈 나도손 내밀어 붙잡아주고등 내밀어 길 건너도록 도왔어야 했는데----------------어렸을 적,일찍 어머니 잃었던 아이.데려다 보살펴주신 숙부님과 숙모님,청소년 시절에 함께 했던 동무.어린 나이로 공무원 되었을 때 사랑해주셨던 직장 어르신들과 동료들,외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다.아가페 사랑이다. 진리를 가르치고 허물은 용서하며 소망을 갖는 것이다. 독생자를 주신 성부 하나님의 사랑이요, 자기 생명을 대속의 제물로 주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이 이런 것이다. 내 심령이 성령 안에 있을 때 예수의 마음을 품을 수 있는 것이다. 기쁨이고 보람이고 행복이다. 어떤 일로, 어디에서, 어떤 형편의 사람을 만나든지 이렇게 대한다는 것은 참된 행복 아닐까.몇 해 전까지 중국의 두만강 변경에 다녔었다.용정에 갈 때면 대성학교와 용문교, 용정, 일송정을 돌아보고 윤동주의 생가를 찾아 명동촌도 갔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새 생명 얻은 구원의 은혜천만 가지 받은 사랑 감사 감사하는 그리고 하루의 평안을 구하는 기도의 손때로는 몸 아파 절망하고 고향과 부모형제 따뜻한 사람들 그리워 슬피 울며 부르짖던 기도의 손손가락 하나둘, 열 개다 잃어성경책도 못 넘겨보고 오른손 왼손 짝 안 맞는 그리고끊어진 손목 남들 앞에 내놓지 못해도당신의 기도 손거룩합니다 하나님이 붙잡아 주십니다
"황 목사님, 소록도에 떡이라도 선물해야지요? 연말이라서 전화했습니다."조현삼 목사님(서울 광염교회)께서 전화가 왔다. 반가운 전화다. 매년 성탄절이나 연말이면 선물을 보내주었다. 몇년 째일까. 10년이 넘었을 것 같다. 기쁨으로 섬기는 일이라서 이렇게 여러 해가 금방 지난 것 같다. 내가 동산교회를 은퇴하고도 소록도교회에 다닌다는 것을 알고 있는 터라 전화를 해준것이다.여러 해 전, 개인적인 만남이 있어서 소록도교회를 소개했었다. 그리고부터 교갱협이나 한국교회연합봉사단 이름으로 성탄절 선물을 보내왔다. 전 교인에게 다 나눠드리
“나는 샤론의 수선화요 골짜기의 백합화로다.” 성경 아가서의 한 구절이다.아름답고 향기로움을 시적으로 표현했다. 찬송가에도 예수님을 “샤론의 꽃 예수 나의 마음에 거룩하고 아름답게 피소서 내 생명의 참 사랑의 향기로 간 데마다 풍겨나게 하소서.” 하였다. 예수님을 닮기 원하는 기도이다.한 평생을 예수님과 그의 양 떼를 위하여 살았던 분, 그녀는 낙도의 영혼들과 함께 살다가 거기서 죽었고, 거기 묻혔다. 故 장기실 전도사 이야기다. 지금은 가로막힌 땅, 평안북도 용천군이 그녀의 출생지이다.할아버지 장정식의 네 아들, 장자 운섭 그리고
다도해 섬마다 세워진 교회에는 주춧돌 같은 아름다운 간증이 묻혀있다.그 한 분 장기실 전도사의 이야기를 발굴했다.장기실 전도사는 1955년에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신학교를 졸업했다. 동기생들은 다 목사가 되었지만 그녀는 총회 법이 허락지 않아서 평생을 전도사도 살아야 했다.서울 돈암동교회를 섬기다 1958년에 고당교회(전남 해남) 담임 교역자로 내려왔다가 1960년 1월에 사면한다. 햇수로 3년 만이다. 그리고 흑산면 대둔도로 떠났다. 고당교회는 농촌교회라도 교인이 백여 명 남짓한 큰 교회였다.목포에서 흑산도까지 5시간 뱃길이었다.
서남해 낙도에 들어와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워 평생을 교인들과 함께 살다 세상을 떠난 한 여전도사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왔다. ‘평안도 여자 장기실’ 이야기였다. 복음의 사자, 예수 사랑과 헌신이었다.아름다운 생애를 찾아 대둔도를 찾아갔다. 몇 분의 증언은 감격이고 감동이고 눈물이었다.목포노회장을 지냈던 백영규 목사(목포상리교회 은퇴)는“장기실 전도사는 도서지역 선교에 특별한 사명감을 갖고 대둔도에 승천교회와 다른 섬에도 교회들을 개척했습니다. 총회신학교 동기생 목사들의 도움도 많이 받았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목포지역(목포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소록도교회 성도들과도 자주 묵상하는 성경 말씀이다. 小鹿島 한문 글자가 작은 사슴인 것은 섬 모양이 이가 사슴이란다. 그분들만 아니다. 누구나 어려운 세상을 살면서 영혼의 목마름을 겪지 않겠는가. 그렇게 피곤한 영혼들이 하나님의 은총, 강물 같은 성령 강림을 사모하는 것이다.여러 해 전, 이집트의 카이로와 시내광야 그리고 이스라엘과 로마를 돌아보는 성지순례를 다녀왔다.무더운 곳이라서 개인용 물병을 가지고 다니면서 자주자주 마셨다. 그러면서 성경에 나오는 대로
1. 축복하고 싶은 사람주향기교회 서신정 권사(56세)대한민국 주요무형문화재 제53호(담양 죽녹원 채상장(彩箱匠)전수관) 2. 축복하는 이유제가 동산교회를 개척해서 30년을 섬기고 은퇴했습니다. 은퇴할 때까지 여러 해를 저희 교회를 섬겼던 신실한 권사님입니다. 지금은 이두희 목사님이 시무하는 주향기교회를 섬기십니다.① 대한민국 주요무형문화제 제53호 채상장(彩箱匠) 명인을 이어가고 있습니다.서신정 권사님은 죽세공에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채상장인으로, 한문 글자 그대로 대나무 껍질을 비단처럼 쪼개서 천연염색을 하고, 그것으로 채상(고
천사들이 하늘에서 불러주는 찬양을 듣는 사람들,참으로 신비하고 영광스러운 체험이 아닐 수 없다. 하늘이 열리는 장면, 신령한 세계가 아닌가. 예수님이 나시던 밤에 들에 있던 목자들이 그랬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의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는 가사였다. 목자들이 베들레헴으로 달려가서 아기 예수님을 뵈었다.천사들의 찬송을 듣지 못하더라도 성도들이 부르는 찬송가도 참으로 신령하고 거룩하다.그리고 찬송을 드리는 것도 성도들이 누리는 큰 복이다. 그래서 “찬송가를 곡조 있는 기도”라 한다. 말
사람이 죽어 한 알의 밀이 되는 것.그것은 예수님이 친히 자신의 십자가 죽음을 예언한 것으로, 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을 영원한 사망에서 구원하신 은혜를 말씀하심이다. ‘복음을 위하여 내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던 바울의 결단과 죽음은 기독교인들의 본이 아닌가.한국에 복음이 전래되던 초기 성도들은 어려운 때에도 믿음의 정절, 순결한 신앙생활을 하였다. 그 가운데 한 분 염광 박관준(鹽光 朴寬俊(1875-1945.3) 장로를 생각해본다. ‘人生有一死 何不死於死/ 君獨死於死 千秋死不死/ 時來死不死 生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