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론에 근거하여 남한 내 통일에 대한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변한 것은 사실이다. 그 동안의 통일에 관한 생각은 이념의 문제로 여겨 남남갈등의 원인이었으며 경제적으로는 부담이었던 것이 사실이다.그러나 통일이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인식전환이 생겨난 것은 무척이나 고마운 현상이다.통일의 여러 전조 현상이 있다고 보는데 그 중에 하나가 북한이탈주민(이하 탈북민)의 증가라고 볼 수 있다.이들을 통해서 미리 다가온 통일을 경험할 수 있는데 이들과 함께 하는 작은 통일의 경험이 후에 더 큰 통일을 담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데
필자는 북측 비무장지대(DMZ)에서 심리전방송요원으로 근무하다가 휴전선을 넘어서 한국으로 왔다. 냉정한 한국사회의 박덕함과 차디참을 견디고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절박함과 통일에 대한 간절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온 이듬해에 대학에서 학부생활부터 시작하여 10년 만에 박사학위도 받고 현재는 통일연구에 천착하고 있다.분단과 통일에 대한 고민을 거듭하면 할수록 분단 70년이 되는 2015년 즈음에 통일의 문을 열지 않고서는 우리 민족의 통일은 불가능하고 영구분단으로 갈수 있다는 두려움과 긴박함에 휩싸이게
아모스 3장 7~8절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사자가 부르짖은즉 누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느냐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누가 예언하지 아니하겠느냐로마서 13장 11~14절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저는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기독교의 영적 유산(학문적 유산 및 현장의 유산)을 정리하고 이를 국내외에 알리는 작업을 진행해 왔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은 불변의 진리지만, 김치냄새 나고 한 많았던 우리 민족이 생명의 복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발전시켜 왔는지 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세계 10위권을 육박하는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생각할 때, 한국기독교 역시 세계에 적지 않은 공헌을 할 것이라 믿었습니다.1. 한 많은 한국민족과 생명의 한국교회한국역사와 한국기독교 역사를 연구해 온 지난 10년간은 한국인으로서의 나
I. 들어가며한국사회에 통일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대통령의 ‘통일대박’ 언급 이후(2014년 1월 6일) 통일 논의는 한국 사회 안에 어느덧 자리를 잡아가는 모양새이다. 정부 내에는 ‘통일준비위원회’가 발족되었고(2014년 7월 15일), 각계각층에서 통일 한국의 그림을 그리는 논의가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매우 바람직하며 앞으로 우리 사회의 통일 논의는 더욱 활발하게 일어나야 한다.올해로 분단 70년을 맞이하면서 국가적으로도 “미래로 통일로”라는 슬로건을 내세울 정도로 통일에 대해 관심을 갖지만, 교회적으로도
Ⅰ. 서론20세기 후반까지 한국교회의 사회발전을 위한 공헌은 나름대로 긍정적 평가를 받을만한 점이 뚜렷했다. 물론 이념적, 역사적 관점에 따라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근대화, 산업화, 민주화 뿐 아니라 환경과 인권, 통일 등 사회 발전 과정에서의 공헌은 적지 않은 사회구성원들이 동의할 만큼 분명했다.(*사회발전이라는 개념은 가치 함축적인 개념으로 근대화 과정을 달성하는 데 기여하는 양식으로 전개되는 사회구조의 변동을 말한다. 참고. 이삼열 외, 『한국사회 발전과 기독교의 역할』(서울: 한울, 2000), 임성빈, “기독교가 한국의
들어가는 말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의 금번 열린대화마당의 주제는 “분단 70주년 선교 130주년, 한국교회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이다. 이 주제의 키워드는 분단과 선교이다. 분단의 극복은 해방 70주년을 맞아하는 한국사회의 가장 큰 과제이며, 교회의 부흥은 현재 침체를 경험하고 있는 한국교회가 당면한 최대의 과제이다. 따라서 필자는 한국교회가 어떻게 하면 다시 부흥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고, 아울러서 한국교회가 통일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검토해 보려고 한다.필자는 역사학자로서 우선 해방 70주년과 선교 130
▣ 프롤로그“북한 주민들은 지구상 가장 낮은 자이다. 한국교회는 왜 침묵하고 있는가? 북한 인권을 말하는 것은 영적 투쟁입니다. 특히 평양은 동방의 예루살렘이라고 말할 정도로 기독교의 성지(聖地)였던 곳입니다. 북한의 자유와 인권을 달라고 기도하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왜 이렇게 한가족인 북한 동포들이 당하는 인권침해에 침묵하고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한국은 인구당 가장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는 나라가 아닙니까? 무엇을 두려워합니까? 북한의 지하교회가 점점 늘고 있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나서야 합니다. 행함이
1. 과거: 이 땅에 선교사들이 들어오던 시기 서구문명과 조우하던 당시의 세 양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배척-유교 정통성의 고수(華夷的 세계관)/ 수용-西器(서기)식 서구문명의 수용/ 토착화-東道西器(동도서기)식 변용. 이런 태도와 더불어 선교의 각축장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교파주의라는 씨앗이 뿌려지게 된 것은 한국교회의 장애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2. 현재: 승승장구하던 교회가 지금 낯선 세계의 이방인이 되고 말았다. 이 세계는 우리의 고향인가? 교회는 본래 순례자요, 독자요, 섬기는 이들이 아니었던가? 한국교회는 세속주의에 빠
I. 선교적 교회(missional congregation)의 정체성1. 21세기, 생명의 세기에 생명의 구원과 해방을 위해 복무하도록 부름 받은 교회는, 십자가 아래에서 수난 당하는 모성성과 부활의 생명력으로 충만한 선교적 교회로 거듭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사는 인류로 하여금 하나님 안에 있는 자신을 새롭게 자각하고, 하나님께 귀의하도록 초대하는 고향과 같은 교회로, ‘하늘’과 ‘땅’이 만나는 경계선에 서서, “이미”와 “아직” 사이의 창조적 긴장을 유지하며, “지금 여기,” 길 위의 순례자로, 역사내재적 종말론적 정체성을
여러분 반갑습니다. 뜻 깊은 자리에 저를 초대해 주셔서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도 어릴 적에 교회를 10년 세게 다닌 적이 있습니다. 지금은 안 다닌지가 꽤 되었지만 교회를 다니면서 어릴 적에 참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제가 그냥 목회하시는 어른들 앞에서 드리는 말씀이 아니고 진심으로 드리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서 교회를 다님으로 해서 제가 노래를 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또 제가 논리적인 토론을 하는 것도 그런 대로 잘 하는구나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과 만났다는 게 교회는 저에게 훌륭한 쉼터였습니다. 단순히 놀러 다닌
1. 들어가는 말2015년 새해가 시작되고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사회적으로는 해방 70주년을 맞이하고 한국기독교로서는 선교 130주년과 장로교 총회 100주년을 맞는 뜻 깊은 해인만큼 한국교회는 벌써부터 기념비적인 행사를 제대로 치러야 한다는 분위기가 달궈져가고 있고, 또 이미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지난 해 연말부터 금년 1월 사이에 기독교 일간신문인 국민일보와 5개의 기독교 케이블TV, 그리고 각 교단에서 발행하는 주간 교계신문 및 인터넷언론들의 뉴스를 분석해 보면, 한국교회 내 주요 연합기구들과 교단들이 공표한 2015년 사
누가복음 2:8-14우리는 또 다시 2015년도의 성탄절을 맞이하였습니다. ‘성탄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물으면서, 이 성탄을 맞이해야 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의 생각을 여는 짧은 이야기 하나를 소개하고자 합니다.밖에서 집에 들어온 아버지가 아들을 향하여 물었습니다. "어디서 난 옷이냐? 어서 사실대로 말해 봐라." 아들이 살 수 없는 고급 브랜드의 청바지를 본 순간, 아버지는 이상한 생각이 들어 아들을 다그쳤습니다. 자신은 환경미화원이고 아내는 작은 고물상을 운영하고 있기에, 아들이 그런 큰돈을 쓸 수 있을 리 없었습니다
여는 말올 것이 왔다! 설교 표절의 문제는 언제든 터질 일이었다. 중소형교회 목사들부터 대형교회 목사들에 이르기까지 한국교회의 목회자들 사이에는 설교 표절이 그리 낯선 일이 아니다. 사실 해묵은 문제이다. 다만 예전에는 언론이 교회 문제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설교 표절이 알려지지 않은 것 뿐이다. 그러나 이제 인터넷을 통해 모든 글과 말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시대가 열리면서 설교 표절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이런 때에 한목협의 열린대화마당에서 설교 표절에 관한 주제를 다루는 것은 시의적절한 일로 생각된다
Sermon의 라틴어 어원 sermo, 혹은 sermonis는 고대 로마의 웅변가들의 웅변을 지칭하는 용어로서 단순히 ‘연설’(speech)을 뜻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교회는 그 단어에 세례를 주어 전혀 새로운 의미로 옷 입혔다. 성경이 결코 단순한 책일 수 없듯이 설교도 단순한 연설이 아니다. 설교는 예배의 자리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요, 회중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행위이다. 그러므로 신학자 에밀 브룬너는 “진정한 설교와 하나님의 말씀이 참되게 선포되는 곳에는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이 지구상에서 일어
목회자들의 설교 표절은 한국교회의 경우 보편적인 현상이 되고 있다. [생명언어설교연구원(대표 박 필 목사)]에서 설문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90%의 목사들이 표절 설교를 한다고 한다. 많은 목사들이 예사로 다른 목사들의 설교를 베껴 설교하고 있고 또 이렇게 하다가 교인들에게 발각되어 교회에서 사면을 당한 목사들도 있고, 그런 문제로 교회가 분란에 휩싸인 경우들도 있다. 또 어느 대형교회의 담임목사도 설교 표절을 하고 이것이 교인들에게 알려져 설교를 중단하고 몇 개월 동안 근신한 일이 있다.특히 인터넷 문화가 발달하면서 목회자들이 남의
1. 상황 인식이번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의 주제가 “한계점에 선 한국교회,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입니다. 이 주제 구성에서 먼저 ‘한국교회가 한계점에 섰다’는 명제에 대하여 생각해 볼 문제가 있습니다. 조금은 길게, 소천하신 옥한흠 목사님 얘기를 하면서 현재의 한국교회 상황에 대한 제 인식을 말씀드리겠습니다.옥한흠 목사님은 한국교회의 상황을 보는 다양한 입장에서 전체적으로 볼 때 비관적인 쪽에 서 있었다고 보입니다. 단적인 예가 2007년 7월 8일 상암동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던 평양대부흥운동 백주년 기념대회의 설교입니다. 옥
빌립보서 2:1~11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세례 요한은 자기에게 나아오는 무리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외치며 회개하고 주의 길을 예비하라고 설교하였다(눅 3:3-14). 예수님께서도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라고 외치며 당시 유대교지도자들의 죄상을 일일이 지적하시며 무섭게 책망하셨다. 그리고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며 우셨다(마 23:1-36). 만약 두 분께서 한국교회에 오신다면 어떻게 하실까? 필자는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며, 그리고 한국교회를 바라보며 통분과 눈물을 금할 수 없다. 특별히 종교지도자들의 죄상을 지적하고 있는 마 23장의 말씀을 읽으면 당황스러움과
한계점에 선 한국교회를 살리는 길은 두 가지로 보인다. 첫째는 하루빨리 좌우의 그릇된 이념과 여야 편들기 정치논리에서 벗어나 주님의 교회로 중심을 잡는 것과 둘째는 가진 자의 자리에서 내려와 사회적 약자와 연약한 지체들과 함께하는 교회로 자신을 비워 낮아지는 것이다.1. 한국교회는 초창기부터 거의 대부분 교회가 지역사회와 연약한 지체를 섬기는 자랑스러운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통합적으로 관리하지 못하고 개별화 되었으며 효과적으로 홍보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많은 수고와 노력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였다.2. 한국교회 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