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벽으로 둘려 싸여 있는 공간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성인이 되어가면서 사람은 자신만의 벽으로 사방을 쌓아서 자기만의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가려고 한다. 특별히 문명발달이 심화 되면서 동일하게 발달한 것이 바로 자기만의 공간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람은 자기만의 공간 안에서 안락함과 쉼과 회복을 얻으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공간 안에 다른 존재가 들어오려는 시도를 할 때 강한 반대 반응을 일으킨다.지금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왕따 현상은 바로 자신의 공간을 주장하는 벽을 더욱 견고하게 세우고자 하는 현상이 아닐
바벨론에 볼모로 잡혀온 다니엘은 자존심이 상했다. 도대체 어른들이 어떻게 살았 길래 우리 민족이 이렇게 무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는가, 무엇보다 땅에 떨어진 하나님의 이름을 어떻게 다시 회복할 수 있겠는가. 나의 생존에만 급급한 사람은 민족적 신앙적 자존심을 들먹일 여유가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늘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생존보다 생존의 목적인 하나님의 뜻에 더 자존심을 거는 법이다.그래서 다니엘은 왕궁의 음식을 먹는 문제로 생존의 위협을 느꼈지만 뜻을 정하고 행동하기 시작한다. “왕의 진미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 개인
최근 각종 경제지표가 호전되면서 사회 각 분야에서 기지개를 켜는 모습을 본다. 감사하면서 한편 걱정도 된다. 어려운 나날을 보내면서 방만했던 자화상을 반성하며 갱신의 기회를 가졌는데, 혹시 온전한 갱신을 이루기 전에 과거로 회귀할까 자못 우려가 된다. 실제로 곳곳에서 과거 회귀의 조짐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특히 교회에 관한 염려스러움이 생긴다. 짧은 역사 속에서 우리는 한강의 기적이란 표현 이상의 고속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90년대에 정체 내지 쇠퇴의 추세로 돌아서며 사실 불안한 양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더욱
지난 3월3일자 기독신문 1면 하단에는 "제84회 총회 선거 공고문"이 발표되었고, 2면 하단에는 "선거풍토 개선 촉구"라는 기사와 함께 "최근 총회 선거 풍토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란 제하의 교갱협의 성명서가 발표되었다. 바야흐로 선거철이 되었음을 실감케 한다. 이런 성명서가 발표된 이유는 부정적인 소문들이 벌써부터 난무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년 선거풍토 개선을 외쳐보지만 개선의 기미는 전혀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더욱 심각한 상황에 이르는 것 같아 하나님 앞에서 두렵고, 교회와 사회 앞에서 부끄러움을 금할 수가 없다.성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한다. "Bad money drives out good." 물론 이 말은 16세기 영국의 재무관인 그레샴이 주창한 경제적인 특히 화폐 유통에 관한 법칙을 말한다. 부실하고 나쁜 화폐가 신용있고 좋은 화폐를 쫓아내어 시장에는 온통 질이 나쁜 화폐가 나돌게 된다는 것이다.그러나 경제 유통이 아닌 현실 목회 현장에서 말하면 이렇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나쁜 목사(목회)가 좋은 목사를 쫓아낸다." 실제로 그러한 목회풍토를 보고 있다. 봉투 좋아하는 목사가 순진한 목사를 오염시키고 있으며, 하
최근에 우리는 교단간의 연합운동이 활발해진 모습을 보고 있다. 좁게는 본 교단과 통합교단의 화합과 일치를 위한 모임, 장로교단의 일치를 위한 모임들, 넓게는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를 통한 교단의 장벽을 넘은 대화와 일치의 운동이다. 바람직한 현상들로 느끼면서도 진정한 일치와 연합을 이루는 것은 쉽지 않으리라는 것이 예상된다. 근본적으로 교회의 영적인 연합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성하고도 근본적인 연합과 동일한 본질적 특성을 가진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분열된 가견적인 교회와 교단의 연합은 성경적이고 바람직한 것이다.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의
한때 한국은 경제성장을 바라는 전 세계 나라의 모범 국가였다. 그러나 지금 한국은 또 다른 의미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부끄럽게도 대내외적으로 급속한 경제적 몰락을 겪으면서 어디서 그런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교훈을 주는 나라가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경제 분석가들은 하나같이 한국의 경제가 국제 경쟁력의 확대와 내실적인 면을 키우기보다는 몸집 불리기와 허울 좋은 외형적 성장에만 치중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를 자초했다고 지적하고 있다.그런데 지금 조금이라도 뜻 있는 목회자라면 한국 교회, 좁게는 우리가 사랑하는 교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