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일이 그리스도인에게 변화를 요구할 때가 있다. 그에 대처 하는 방식을 5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정리한 것이 있다.하나는 거부하고 떠나는 것이다. 수도원 운동이나 톨스토이의 문화 단죄의 방식이다. 하나는 변화에 순응하는 것이다. 변화 자체를 하나님의 뜻이라고 보고 순응하는 태도인데 자유주의자의 모습이다. 하나는 이 둘의 중간자의 입장으로, 순응하면서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는 태도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길이고, 로마가톨릭의 입장이다. 하나는 변화는 곧 하나님의 은총을 더욱 필요로 한다고 여기는 역설적인 태도로서 마르틴 루터의 견해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상황이 악화하면서 해외 선교지에서 선교사들이 철수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총회세계선교회(GMS) 자료를 보면 세계 102개국에 파송된 1435가정의 선교사와 자녀 4909명 중 10%에 해당하는 492명(5월 말 기준)이 귀국한 상태다.철수 이유를 살펴보면 기저 질환 및 의심 증상, 코로나로 인한 대면사역 전면 중단, 물가 폭등과 달러화 강세로 인한 선교비의 상대적 감소, 치안 불안 등 다양하다. 선교사들의 귀국 행렬이 이어지면서 긴급대응도 속속 이뤄지고 있다. 긴급대책팀이 가동돼 선교사 가정의
감사는 회계감사와 직무감찰(감사) 기능을 포괄하고 있다. 이러한 감사의 전통적 개념을 살펴보면 회계감사는 조직의 회계기록을 제3자가 권한을 갖고 검토 및 검증하는 행위로 간주한다. 감사 대상기관과 소속 직원의 직무수행 활동이 법과 관계규정에 위반되는지 살피는 행위를 직무감사로 정의하고 있다. 그런데 총회감사는 이 부분에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감사부원들이 전문성과 객관성이 부족하다는 점이다.또한 우리에게는 감사에 대한 규범적인 매뉴얼이 없다. 여기에 감사부원의 전문성 결핍으로 겉핥기식 감사가 반복되고 있다. 그렇다보니 소극적이고
최근 우리 교단 내 일부 교회에서 발생한 성적 스캔들과 재정 비리 그리고 교회 내 이전투구(泥田鬪狗)적 분쟁 소식에 씁쓸함과 더불어 위기감마저 든다. 그러더니 ‘리더 훈련’이라는 명목 아래 평신도들에게 이단에서나 볼 수 있는 비정상적인 행위를 요구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벌어졌다. 칼빈주의 보수신학 전통을 지키는 개혁주의 교단에서 어떻게 이런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물론 교회 내 사정이 있겠지만 같은 제자훈련을 하는 목회자로서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 사건은 목회자의 품격에 큰 타격을 주었다.오늘날 목회자 한
코로나 점검문제 앞에서 사람들은 언제나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경험을 의지하려 한다. 이러한 우리의 경험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거대한 시대상황이라는 물줄기를 거스릴 수 없음을 바라보게 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 앞에서 인간의 경험이란 문제해결의 임시방편에 불과하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방법이 될 수 없다. 인간의 경험이 만들어낸 전통과 윤리도덕, 나아가 법체계란 율법과 마찬가지로 진리가 아니라 진리로 향하는 과정일 뿐이기 때문이다.코로나19에 처한 한국교회의 모습을 안타까움으로 바라본다. ‘혼돈’과 ‘혼란’이라는 표현이 적합할 듯
코로나19 속의 한국교회 현실직면한 문제 앞에서 사람들은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언제나 경험에 의지하려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경험은 문제해결의 열쇠가 되기보다는 거대한 상황의 물줄기를 거스를 수 없음을 깨닫게 합니다. 문제 앞에서 인간의 경험이란 문제해결의 임시방편에 불과하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방법이 될 수 없음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인간의 경험이 만들어낸 전통과 윤리, 나아가 법체계는 율법과 마찬가지로 진리가 아니라 진리로 향하는 과정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상황을 보내고 있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인 혼란과 위기는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미증유의 공황적 상황이다. 그 가운데 건물을 임대해 운영하는 교회들이 임대료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것을 발견하고, 총회의 기관과 단체, 개교회가 분연히 일어난 움직임이 임대료 지원 사업이었다. 미래자립교회 임대료 지원 캠페인은 가슴 벅찬 사랑의 메시지였다. 그런데 호사다마라고 하였던가. 많은 곳에서 섬기고자하는 원론은 좋았으나, 창구일원화가 되지 않아 각론에서는 혜택받은 교회 쏠림 현상, 즉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여지없이 나타났다.임대료 지원 연결 활동을 했던 필자는
2020년의 부활절은 여느 해보다 특별하다. 21세기의 인류는 코로나19 상황에서 깊은 자기 성찰을 요청받고 있다. 가장 큰 담론은 문명사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코로나19가 깔끔하게 종료되든 인류가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중장기적인 방식으로 종료되든 코로나19 이후에 우리가 사는 세계는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으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인식이다. 새로운 존재 방식과 일상이 시작될 것이다.인류가 지구 행성에서 살아온 방향에 중대한 오류가 있었다는 것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큰 오류는 현상적인 창조세계를 인간이 마음대로 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이라는 초유(初有)의 사태를 만난 한국교회는 이번에 많은 공부를 하게 되었다. 이번 공부를 통해서 얻은 교훈을 여기서 세 가지로 말씀드리고자 한다.첫째, 재난 상황에 대한 발 빠른 성경적 해석이 필요하다.코로나19가 전국에 걸쳐 확산되면서 교회의 공적예배가 전염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온라인 영상예배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일선 목회자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례 없는 이번 사태에 대해 일선 목회자가 성경적, 교회사적으로 명쾌하게 답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이런 이슈에 대해
코로나19가 인류를 상대로 ‘제3차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세계보건기구(WHO)가 팬데믹(pandemic)을 선언했다. 세계 모든 국가들이 의료, 보건 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국제, 사회 등 모든 영역에서 미증유의 피해와 고통을 겪고 있다. 경제가 붕괴될 조짐까지 나타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이 전쟁은 장기화될 것 같다.정부는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등에 근거하여 여러 가지 예방을 취하고 있다. 정부는 교회에게 현장예배 중단을 동법 제49조 제1항 제2호에 의해 ‘권고’하고 있다. 교회가 현장예배 외에 영상예배나 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정상의 사회를 비정상화시키고 있다. 교회가 그 영향을 가장 크게 받으면서 지극히 비정상 상태로 내몰리고 있다. 헌법이 보장한 집회 결사의 자유를 빼앗길 뿐 아니라 주일예배 모임에 대해 행정명령을 발동시켜 불법 모임으로 간주하고 벌금을 부과한다는 경고까지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초유의 상황 아래서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영적 순결과 합리적 지혜가 더더욱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교회는 구원 받은 자의 공동체이다. 뿐만 아니라 세상을 구원할 복음을 가지고 나아가 전파할 선교적 사명을 갖고 있다. 구원 받은 자들의 최고
현대를 뷰카(VUCA)시대라고 한다. 뷰카의 뜻은 V(Volatility, 변동성), U(Uncertainty, 불확실성), C(Complexity, 복잡성), A(Ambiguity, 모호성)이다. 현재도 그렇지만 앞으로는 더더욱 뷰카시대가 될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 환경 등 모든 영역에서 변동성, 불확실성, 복잡성, 모호성이 큰 시대가 될 것이다. 지금보다 앞으로 더 문제다. 목회자도 교회도 이런 시대를 감당할 지혜와 능력이 없다면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뷰카시대를 감당할 지혜와 능력을 위해서 우리는 여러 방면에 노력
우리나라 성도들이 애창하는 복음성가 중의 하나가 ‘나의 등 뒤에서’다. 필자도 미국 유학 시절 돈 떨어지고, 공부하기가 힘들었을 때 자주 부른 찬양이다. 이 찬송을 작사 작곡한 이는 최용덕 찬양사역자이다.이 찬송은 그의 자전적 고백이다. 청년의 시기에 몸과 마음과 환경이 그를 절체절명의 상황으로 몰아갔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뜨겁게 만나주셨고 일으켜 세워주셨다. 입술로만의 찬양이 아니라 바로 삶으로의 찬양이 된 것이다. 그가 다리가 아파서 만사를 포기하려 했을 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도원에 기어가다시피 올라가 주님께 부르짖
불혹을 넘어 지천명의 나이에 접어든 사람에게 세상사가 별다른 신선함을 주지 못할 수 있다. 얼마 전에 서커스를 관람할 일이 있었다. 평소 서커스에 관심이 없고 내용도 뻔할 것이라 생각했기에, 괜한 시간낭비를 할 것이라 내심 생각했었다. 그러나 상황은 전혀 달랐다. 고정관념 속에 있는 서커스가 아니었다. 서커스에 스토리를 입히고, 단원들은 분장과 의상으로 배우가 되어 있었고, 첨단 영상과 음향 기술을 동원해서 관객들을 환상의 세계로 몰아넣었다. 그 서커스는 단순한 서커스가 아니라 예술의 경지로 승화시킨 작품이었다. 그 공연은 많은 생
내년 1월 13일부터 한주간 ‘직분자 금식기도회’를 의정부 광명교회에서 갖는다. 총회영성회복기도운동본부에서 주관한다. 기도를 통한 영성회복은 104회기 총회장의 주요 공약이다. 그리고 기도운동본부는 실무를 책임진다.직분자 금식기도회는 요일별로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6시간 동안 각 직분자-목회자·신학생(월요일), 장로(화요일) 집사·권사(목요일), 주일학교 교사(금요일)-들이 한자리에 모여 한 끼를 금식하며 기도하는 자리다.이 시점에서 직분자 금식기도회를 왜 하는가에 물음표를 던질 수 있다. 당연한 이유가 있다. 기도는 성도
올해도 어김없이 12월은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마지막 달을 변함없이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한해를 결산하는 12월은 정신없이 분주하게 살아왔던 우리에게 생각과 점검을 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을 주고 있다는 점에서 참으로 의미 있는 달이다.12월이 되면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불우이웃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다. 추위, 배고픔, 외로움, 노숙자, 고아원, 양로원 등의 단어들을 생각하며 우리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한다. 불우 이웃과 소외된 계층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은 ‘한시적 생활보호 대상자
총회가 설립된 지 100년의 세월이 흘렀다. 100여 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우리 교단은 아름다운 역사와 전통을 이어왔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개혁된 교회는 날마다 개혁되어야 한다”고 했다. 종교개혁 이후 교회는 부패하고 잘못한 것을 성경적 관점에서 비추어 보고 성경에서 벗어난 것들은 과감하게 제거하면서 개혁을 이루어왔다.이런 점에서 지금 총회가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분별하고, 그 뜻을 이뤄가고 있는가를 살펴볼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총회의 순기능 회복을 위한 몇 가지 생각을 나누고자 한다.첫째, 총대 수를 조정해야 한
지난 10월 28일 제104회기 총회 상설위원회와 특별위원회를 섬길 위원 명단이 발표됐다. 예년보다 특별위원회가 빠르게 발표됨으로써, 104회 총회에서 수임한 모든 임무가 신속하게 다루어지게 된 것은 상당히 고무적이다.특별위원 배정에 있어 총회임원회는 최근 5년간 특별위원회 현황을 면밀히 분석하여 5가지 원칙을 세워 진행했다고 한다. 1인 1특별위원, 노회 안배, 3년 이상 연임자 배제, 기관장 상비부장 재판국원 선거관리위원 감사부원 배제, 총회임원 당연직 최소화 원칙을 정해 특별위원을 배정했다. 그럼에도 지역안배나 특정 노회에 편
지난 104회 총회에서 총신대와 관련하여 두 가지 기억이 또렷하다. 하나는 이재서 총장의 울먹이는 인사와 부탁에 울컥하는 총대들의 모습이다. 또 하나는 운영이사회 폐지와 재단이사회 확충에 관한 열띤 토론이다. 결국 전자투표 결과 670대 364로 통과되었다.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운영이사회의 필요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각 노회에서 파송한 이사들로 구성된 운영이사회가 실제로 총회가 운영하는 학교인 동시에 노회가 위탁한 목회자 후보생을 양성하는 기관임을 보여주는 제도임에 틀림없다. 어쩌면 지난
목회 현장을 떠난 지 벌써 5년째다. 흐르는 세월을 체감하는 원로목사로서 한국교회의 미래가 염려스럽다. 원로들이 잘했고 후배들이 잘못하고 있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 목회자들이 다함께 엎드려 기도하며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임을 자각하자는 뜻이다. 자유주의, 인본주의라는 세상 물결이 우리의 영혼을 조금씩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있지는 않은가?하나님의 말씀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본주의가 아닌 인본주의가 일어나는 상황을 체감하지 못하는 현 시대의 영적 상태가 염려된다. 아브라함과 이삭을 부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