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 주요 교단들의 총회가 열리는 9월이 왔다. 물론 5월에 총회를 개회하는 주요 교단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장로교단들이 매년 9월에 정기총회를 열고 임원개선과 주요 정책을 결정하기 때문에 9월은 한국 교회로서는 가히 총회시즌이라 불릴만 하다. 각 교단의 총회헌법은 대부분 "총회는 총회 산하 모든 지교회 및 치리회의 최고회"라는 취지의 내용이 명시되어 있다. 이것은 총회가 전국교회의 대표성을 띠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산하 노회나 지방회와 교회에 대하여 입법, 사법, 행정에 있어서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는 내용이다.
우리 총회회관은 건축 초기에는 언덕 위에 우뚝 선 깨끗한 건물이었지만 이젠 눈에 띄게 낡은 건물이 되었다. 주위에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우뚝 선 대형건물들이 많아져 우리 총회의 위상마저 추락시키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없지 않다. 회의 마치면 식사할 만한 변변한 식당 하나 없다. 그러다 보니 강남의 비싼 밥값에 적절한 가격의 식당을 구하는 것이 큰 과제가 되었다.주차공간이 좁아 주차전쟁은 일상화 된지 오래다. 명색이 총회회관인데 예배당조차 없다. 규모가 큰 행사를 할 때마다 2층의 여전도회관을 빌려 쓰고 약간의 사용료를
가난 이야기요즘 우리나라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고통하고 있다. 꽉 막힌 세월호 정국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현실적 박탈감을 주고 있고, 날로 심화 되고 있는 빈부격차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심리적 박탈감을 주고 있으며, 일자리조차 찾지 못하는 젊은이들은 삶에 대한 의욕까지 박탈당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경제윤리를 다시 생각할 때다. 가와카미 하지메 교수가 1916년에 신문에 4개월간 연재하고 그 다음해에 책으로 출간한 는 이제는 고전에 해당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가난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은 불미스런 면에서도 자랑스런(?) 나라다. OECD 국가 중 이혼율이 1위로 올라섰다. 실업율도 거의 1위이다. 노동자의 노동시간이 1위이고, 빈부격차는 갈수록 심해진다. 학생들의 공부하는 시간이 1위이고, 대학입학 경쟁률도 1위이다. 대학을 졸업해도 수 백대 일의 취업경쟁을 뚫어야 한다. 자연히 젊은이들의 취업이 늦어지고 결혼이 늦어진다. 늦은 결혼에 벅찬 유아교육비로 인해 자녀 출산을 힘들어 하고 꺼려한다. 자연히 자녀 출산율이 낮아진다. 결국 자녀 출산율도 OECD 국가 중 최저를 기록하고 있다. 노인인구 증가율이 이제
제99회 총회가 한 달이 채 남지 않았다. 들려오는 소문을 종합해 보면 이번 총회도 그리 만만찮을 것 같은 염려가 있다. 언제까지 우리 총회가 이렇게 가야 하는가? 한국교회의 현실은 복음전도에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교회연합기관 및 몇몇 교회의 초대형 사고들의 중심에 우리 교단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제 우리 총회는 달라져야 한다. 더 이상 이미 일어난 사건사고의 뒤치다꺼리에 바빠 미래를 대비하지 못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이번 99회 총회만큼은 교회의 현재를 치료하고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탁월한
매년 구정과 추석 명절이면 사람들은 이미 예정된 귀성전쟁을 마다하지 않는다. 또 하나는 명절 증후군이라는 신종 병을 앓는다. 그럼에도 고향을 찾고 가족을 만나며 친지를 만나 차례를 지내며 즐거운 시간을 가진다.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명절도 주안에서 합당하게 보내야 함을 잊지 않아야 한다. 이 좋은 때를 사랑과 섬김으로 전도의 기회로 삼아야하겠고 또 우상 숭배하는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우상(偶像)이란? 어리석은 형상이란 뜻인데 예컨대 부처상을 만들어 거기 절하거나 섬기면 우상숭배가 된다. 뿐만 아니라 하늘에 해, 달, 별 등을 향
풍요의 역습‘콜레스테롤의 날’ 이라고 들어보셨는가? 가 동맥경화, 고혈압, 뇌졸중 등 심혈관계 질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콜레스테롤에 대한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9월 4일을 제1회 ‘콜레스테롤의 날’로 선포했다. 옛날에 생활이 어려워서 못 먹고 못살 때는 각기병이나 폐결핵 등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 때 소원은 죽더라도 하얀 쌀밥에 고깃국 한번 먹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너무나도 다양하고 풍성한 음식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 이 나라 역사 이래 지금처럼 잘 먹고 잘사는 때도 없었을 것이
가을의 문턱인 9월이 오면 어김없이 다가오는 교단총회가 있다. 평범함을 넘어 위대함으로, 안주함을 넘어 열정으로, 그리고 미래를 여는 총회가 되어서 한국 교회를 세워가는 교단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 건설과 도래에 몸부림치는 결단이 보여 지는 총회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무엇보다도 먼저 총회를 바라보는 총대들의 인식 전환과 지도자를 세우는 바른 선택이 있어야 하겠다. 후보들의 각축은 그렇다 하더라도 지도자를 뽑는 총대들이 바른 양심과 바른 인식을 가진다면 분명히 우리 교단도, 그리고 교회의 미래도 달라질 것이다. 사건만 보는
요즘 두 인물이 한국사회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한 사람은 흥행중인 영화 ‘명량’의 주인공 이순신 장군이며, 또 한 사람은 프란치스코 교황이다.우리나라 사람 중에 이순신 장군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재조명된 이순신 장군의 강력한 리더십에 요즘 국민들이 다시 한 번 갈채를 보내고 있다. 위기에 선 나라를 위해 자신의 위치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간파하고, 어떤 반대 세력이나 권력 앞에서도 굴하지 아니하고 죽음을 각오하면서 자신의 안일이나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오직 나라를 지켜야 하겠다는 일념으로
싸움꾼인가? 화해자인가?지금 우리 사회는 심각한 양극화 현상이 서로를 힘들게 하고 있다. 정치 경제의 이해관계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부딪치고 있으며 종교 간의 갈등 또한 교황 방문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이럴 때 성경을 절대 신앙의 원리로 삼고 살아가는 개혁교회는 싸움꾼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성경진리를 포기하는 화해자여야 하는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한다.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부름을 받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면서 또한 하나님의 통치권 아래 있는 세상으로 파송을 받았다. 세상과 구별되면서도 세상을 변화시켜야 할 책임이 있는
일부 목사들, 장로들, 또는 교인들에게서 독특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것은 자신의 “신앙관” 보다 “정치관”이 판단의 우선순위가 된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말씀 보다 자신의 이념과 신념이 우선되는 언행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결과 교인들에게 극좌, 혹은 극우 내용의 발언을 서슴치 않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흑백논리, 그리고 편 가르기, 그로 인한 아픔과 분열이 교회 밖의 이야기가 아닙니다.교회 선생님이 성경공부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습니다. “예찬아, 정글여행을 갔는데 갑자기 큰 사자가 너를 쫓아오면 어떻게 할래?
사람이 무섭다최근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사건들은 마음이 아픈 정도가 아니라 우리가 지금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 아니면 인간성을 상실한 인류가 동물처럼 서로 죽이는 황폐한 어느 상상영화 속에 살고 있는지 혼란스럽다. 세월호 사건은 병든 우리 사회의 증상이 표면으로 나타나는 시작에 불과했다. 최근에 시리즈로 터지는 사건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중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다. 그 원인은 심각한 인간성 파괴에 있다.육군 제28사단에서 윤일병이 사망한 사건은 좀처럼 감동하지 않는 정치인들도 천인공노할 살인사
(이 글은 2014년 5월 5일 기독교 대학청년통일 대회에서의 기조연설을 약간 수정한 것입니다.)1. 통일에 대한 환상 깨뜨리기동구권이 무너지고 독일이 통일되면서, 우리에게는 한반도의 통일도 임박했다는 기대가 컸었습니다. 물론 그런 기대의 이면에는 독일과 같은 방식의 흡수통일이 전제되어 있었습니다. 1993년에 집권한 김영삼정권 당시는 북한 정권의 붕괴를 대세로 생각했고, 통일정책을 이 전제위에 세우려고 했습니다. 북한 역시 동구권의 몰락 가운데 흡수통일에 대한 우려를 갖고 보다 적극적으로 남한과의 대화의 문을 두드렸습니다.그러나
유병언의 주검 무엇이 문제인가?나라의 공권력이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는가? 유병언의 주검을 두고 불신의 먹구름이 온 나라를 뒤덮고 있다. 주검으로 발견된 유병언의 시신이 유병언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독한 불신이 문제다. 아무리 과학적 수사라고 해도 안 믿는다. 지금은 유병언의 주검이 아니라 진짜 유병언이가 살아온다고 해도 유병언으로 믿지 않을 것이다. 경찰의 초동 수사를 문제 삼아 순천경찰서장과 형사과장이 직위해제 되었다. 그런데 그것이 처방은 아닌 것 같다. 검찰과 경찰에 대한 불신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
지난 6월 28일은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의 황태자부부가 한 세르비아 청년에 의해 저격된 지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되었던 이 날을 즈음해 유럽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은 이 비참한 대량살상 전쟁을 되돌아보면서 다시금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겼다.이 저격 사건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지배를 놓고 세르비아와 오스트리아와 갈등이 첨예된 가운데 일어난 것이다. 이 두 나라의 배후에는 범슬라브주의를 앞세우는 러시아와 범게르만주의를 앞세우는 독일의 제국주의가 있었고, 비스마르크 이후 유럽의 맹주로 군림하는 독일을 견제
혼자 산다면 굳이 전문가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내가 누군가를 책임지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전문가여야 한다. 단체의 리더라면 더 그렇다.왜냐하면 지금은 전문가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세상은 복잡해지고 다양해졌다. 지금 우리 사회가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구조 현장에 구조 전문가가 없다. 재난 현장에도 재난 전문가가 없다. 전문가가 없는 현장은 얼치기가 설친다. 그 결과는 모두의 비극이다.현대는 전문가 시대교회도 전문가가 필요하다. 예배만 해도 전문성을 요한다. 방송, 찬양, 안내는 물론 설교까지. 회중들의 시청각 수준이 높아졌기
브라질 월드컵 준결승에서 축구의 강국 브라질이 독일에게 처참하게 무너졌다. 7:1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스코어였다. 독일 승리의 원인은 탄탄한 조직력으로 미드필드를 장악하는 압박축구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통합에 성공한 것이다. 브라질 축구의 패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유를 이야기 한다. 공격수 네이마르의 부상, 그리고 수비수 실바의 결장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한다.그러나 그것이 진정한 패인은 아니다. 그들은 통합에 실패했다. 그동안 브라질은 미이마르와 실바가 출장한 경기에서도 브라질다운 경기를 보여주지 못하고 승리했다.
교회는 벌거숭이다. 교회에서 행해지는 말들이 세상에 거의가 노출되고 있다. 교회가 IT 기술을 복음 선교에 사용하면서부터 이미 스스로 강단을 세상으로 열어 놓았다. 시작은 자신감이었다. 이젠 갈수록 그 자신감이 위축되고 있다. 목사들이 세상의 지성을 얕잡아 본 것 같다. 물론 그 선교 매체가 세상의 지성을 대상으로 한 것은 아니다. 매체를 통하여 교회를 홍보하고자 시작한 것이었고, 교인들에게 목사를 알리는 효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었다.그런데 이젠 그 열린 문들을 통하여 세상 지성들로부터 공격을 당하고 있다. 목사만이 아니라 교회
역사는 언제나 ‘만남’에서 시작된다. 어제의 만남이 내일의 역사를 새롭게 기록하는 단초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사회공동체든 사적 공동체든 지도자로 그 역할을 감당하는 이들의 만남은 단순한 만남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그래서 지도자들의 만남은 항상 공동체 구성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특히 공적인 만남일 때 더욱 그러하다. 실례로 7월 3일 중국 최고지도자인 시진핑 주석의 국빈방문을 통한 한중 정상의 만남을 보자. 북한의 핵보유에 대한 입장정리와 일본의 군국주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는 복잡한 동북아 정세
나는 20년의 지역교회 목회 은퇴 후 최근 2년간 거주 리서치와 아프리카 초기 문화 적응을 위해 머물던 탄자니아를 떠나 옆 나라 케냐로 이주했다. 이곳에서 내 선교 소명의 비전인 빈민사역을 준비해서 실천할 예정이다. 아프리카로 나오기 전에도 거의 매년 빠뜨리지 않고 15년 동안의 선교지 탐방을 통해 선교의 경험을 쌓고 안목을 넓히며 선교지와 선교사에 대한 이해를 충실히 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직접 현지에서 2년 동안 살았던 경험은 선교사와 선교지를 직접 체험하며 아주 많은 것을 깨닫는 좋은 시간이 되었다.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