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많아지도록 소식과 인사를 전해오는 분들이 무척 반갑다.2020년, 코로라19 때문에 교회가 예배 모이기 힘들고, 성도의 교제가 단절된다. 선교사들도 형편이 어려워 귀국하기도 한다. 전망이 어둡다.멕시코에서 사역하는 임 선교사가 카톡으로 현지 소식을 전하면서 자기의 사역을 위해 기도해 주란다. 그는 1989년에 동명교회가 파라과이로 파송하였으니 몇 년 전에 멕시코로 옮겼는데 지금은 60세를 넘긴 원로 선교사가 된 것 같다.답장을 띄웠다. “당신 부부도 나이가 많고, 사역지도 뜬금없이 멕시코로(파라과이에서) 옮겼으니 고생이 많을
“통 밥맛이 없어요. 무엇을 먹고 싶지도 않아서 묵는 둥 마는 둥 해요. ”코로나19 난리 통에, 작년에 만나고 지금껏 뵙지 못한 장인심 권사님(신성교회)의 힘없는 목소리가 전화통으로 들려온다.성탄절에 떡을 가지고 소록도까지 갔을 때, 손잡고 하고 싶었던 말 “따뜻할 때 잡수셔요” 하는 인사를 못한 것이 큰 아쉬움이었다. 외부인은 동리에 들어갈 수 없어서.금년에 팔순을 넘긴 나이에 기력이 쇠하였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어쩐지 짠한 생각이 든다.노인 교인들과 모여서 기도하고 찬송하는 일에 주일이 따로 없는 분들 아니던가. 정오기도를 모이
9월 2일 주일 오후 예배.소록도 5개 처 교회가 중앙교회에서 연합예배를 드리는 날 설교자로 초청을 받았다. 광주에서 오전 9시 10분에 출발하니 소록도에 11시 반에 도착했다.점심을 약속한 소설가 강선봉 집사 댁에 먼저 들렸다. 부인이 정성스러운 집 밥을 준비해서 내놓는다. 건너편 녹동 시장에 나가서 찬거리를 사 오셨다고.언제부터인가 이렇게 강 집사 집에서 밥을 얻어먹는다. 지금까지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강 집사 내외가 한 끼 식사 대접하는 것을 기뻐하는 모습이 참 감사했던 것이다.오후 1시가 오후 예배 시간인데, 12시
소록도에 자주 드나들었다. 어느 해에는 3개 월 동안 소록도 교회들 주일예배와 수요 예배를 맡아 광주에서 소록도까지 시간 맞춰 다니며 예배를 인도했었다.섬겼던 광주동산교회 여자 성도들이 김치를 담가 남성교회에 나눠주러 갈 때면 중앙리 병사病舍에 들려 김신아金新牙 장로를 만났다, 부인은 중병으로 거동이 불편해서 소록도병원에 입원하고 있어서 혼자 생활하고 계셨다.그러고는 그가 연주하는 피아노에 맞춰 찬송가를 함께 부르는 것이 큰 은혜와 감동이었다. 또 그가 지은 복음성가를 부르면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찬 바위에 밤은 깊어가고/ 겟세마
“통 밥맛이 없어서 오늘은 아무것도 안 먹었어요. 북한 열리면 평양 가야 하는데 이러다가 통일도 못 볼가 싶어 걱정입니다.”소록도 장은심(가명) 할머니의 인사이다. 코로나19로 겪는 격리 생활에 지친 기색이다. 함께 생활하던 몇 분이 요양 병동에 입원해서 날마다 문병을 했었는데 그 일도 못한단다. 그렇지만 매일 정오면 신성교회 예배당에 네댓 명이 모이는 기도반은 계속하고 있단다.내가 소록도에 드나들면서 한국 교회의 아름다운 기도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이 기도반을 만났었다. 격려하면서 두세 사람만 남을 때까지도 이 모임을 끊지 말자고
존경하는 조현삼 목사님께늙은 노인들만 남은 소록도(평균 연령 75세).코로나 위기에 발길 뚝 끊기고 외롭게 살아가는 이때교회에서 마을 담당들을 불러 서울광염교회서 보낸 찰밥 도시락 집집마다 다니며 나눠줍니다.이 추운 날씨에 웬 사랑, 웬 은혜인가?어떻게 여길 왔을꼬. 궁금해하며 온기가 남은 도시락을 먹습니다.아내와 함께 나섰습니다.서해안 대설이 그치고 영상으로 기온이 올라 길이 열렸습니다.딱 좋은 날 잡아 나서니 다행입니다.4일 전에 주문한 찹쌀 도시락은 떡집에서 찾아동산교회 젊은 부목사님이 운전하는 봉고에 싣습니다.소록도 떡을 맡
소록도 사람들의 애틋한 이야기를 포근하고 따뜻하게 감싸주어야 한다.운전 중에 급하게 받은 전화는 강선봉 시인이다. 아내 건강이 갑작스럽게 안 좋아서 지금 구급차를 불러 전남대학병원 응급실로 온다는 것이다. 며칠 동안 상태가 안 좋았는데 소록도병원에서는 치료할 형편이 못 된다는 것이다.황혼이 내리듯 마음이 조급하다. 2시간은 걸려야 광주에 도착할 것 같다. 내가 그를 ‘형님’이라 부르는 것은 같은 시대를 살아온 공감 때문이다.강선봉 소설가의 슬픈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수년 전, 소록도 남성교회에서 처음 만났다. 예배시간이면 피아노를
10월 9일 주일, 소록도에 내려가 주일예배를 드렸습니다.12시 북성교회, 13시 신성교회에서 히브리서 12장으로 '예수를 바라보자'라는 제목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저는 설교를 준비하면서 그리고 말씀을 들으시는 교인들을 바라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예배를 마치고 남생리에서 사시는 구남이 집사님(87세) 댁에 들렸습니다. 기도가 생활이고, 기도가 일이고, 기도가 호흡입니다. 예배당 가는 것이 외출이고, 예배당 가는 것이 걷기 운동이고 예배당 가는 것이 만남의 시간입니다. 사람도 만나고 하나님도 만나고.소록도에서 같은 형편에 있는
"예쑤 아이니" 예수 구원 찬양예쑤 아이니 예쑤 아이니 짜이니 썽밍중 찌우따더푸펀찌우쓰 예쑤 융웬 아이니예수 아이니 예수 아이니 짜이니 썽밍중 찌우따더판왕찌우쓰 예쑤 융웬 아이니...예쑤 아이니 예쑤 아이니 짜이니 썽밍중 찌우따더푸펀찌우쓰 예쑤 융웬 아이니 예쑤 아이니 예쑤 아이니짜이니 썽밍중 찌우따더 푸펀찌우쓰 예쑤 융웬 아이니...예수님이 당신을 사랑 합니다예수님이 당신을 사랑 합니다당신의 생명에 가장 큰 축복은 바로예수님이 당신을 영원히 사랑하는 것입니다...당신을 죄의 권세에서 구원해주시고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고그분만이 당
소록도중앙교회에서 5개 교회가 모이는 연합예배 설교를 맡았다. 일찍 도착해서, 한 시간 전에 예배당을 들여다보니, 벌써 나와서 기도하는 분이 여럿이다. 예배가 끝나면 불편한 몸을 서로 의지하며 집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예배 전에 나와서 찬송하고 기도하는 것이다.이들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구원받은 은혜가 감사하다고 말한다. 한센병에 걸리면 부모라도, 부부라도 함께 살수 없고, 헤어져 살 수밖에 없었다. 없었던 사람으로 치고 다시 만나지 않아야 했다. 그런 사람들이 복음으로 찾아오신 하나님을 만났고, 예수님을 만나
남해안 지방에 4백 밀리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 소록도 장 권사의 전화를 받았다. 물난리라도 날 것 같다며 걱정하는 안부 전화다. 코로나 때문에 소록도병원 출입을 폐쇄하고는 가질 못했으니 만나본 지 오래되었다.장 권사와 할머니들이 모여 찬송하고 기도하는 신성교회 ‘정오 기도팀’은 지금도 예닐곱 명이 모인단다. 한국 교회의 자랑스러운 ‘기도 전통’이라서 내가 교회 은퇴하기 전부터 찾아가 설교도 해주고 이야기도 나누었다. 요양 병동으로 들어간 박정자 집사(85세)의 형편이 궁금해서 근황을 물었다. 얼굴과 손에 한센병 흔적이 있어선지 모
강선봉 노인(75세, 소록도남성교회)의 소록도 어머니는 눈물과 통곡으로 기도했던 한나 같은 어머니였다.한센병을 앓으면서 쫓겨나듯 시집을 나와 험악한 세상을 유전했던 한 많은 여자.소록도에 강제 수용되어 세상 모든 것을 끊고 살면서도 유일한 소망이었던 아들이 한센병으로 진통하는 것을 보면서 애간장이 끓었던 여자.중도에 실명했지만 믿음의 눈으로 천국을 바라보며 아들에게 영원한 천국에서 만나자고 당부했던 이야기를 그의 자서전 에서 만나본다.강선봉의 어머니 박 씨는 함양에서 태어나 산청에 사는 분과 결혼했는데
토요일, 점심 약속이 있어서 집을 나섰다. 운전 중에 핸드폰이 울린다. 소록도 사는 소설가 강선봉 씨다(소록도 동성교회). 내가 형님이라 호칭하는 것은 여든이 넘은 나이 때문이다. 아내가 갑자기 위중해서 구급차로 전남대학병원 응급실로 가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묻는다. 콩팥이 안 좋다는데 혈압이 뚝 떨어지고 상태가 안 좋단다. 소록도 가면 종종 점심을 대접해 주시는 부인 송 집사님이시다. 작년에는 텃밭에서 가꾸어 열매로 담갔다는 발효식품 약을 받아오기도 했다.대학병원에서 일하는 사위에게 물어서 입원 절차를 알려주었다. 그렇게 응급
사랑스러운 작은 딸 황용우에게세월이 많이 흘러도 사진은 늙지 않는구나.엄마는 오늘(5월 8일) 목욕탕 다녀와서 피부가 많이 늙었단다.입은 그대로 살았고. 맞지. 맞는 말이고 말고.요즘, 나는 책상에 앉으면캐나다 여행 사진을 자주 보며로키의 호수나 설산이 어울린 풍경을 들여다보고, 사진 수정도 하면서바탕화면을 바꿔놓고 들여다 본다.2009년에 갔었던 사진부터, 2011년, 2013년 등, 격년으로 다니며너희들이 동행했었다. 호수로 공원으로 캠핑장으로...너희가 보내주었던 캐나다 동부 여행,그리고 너와 영진이랑 함께 갔던 미국 서부 관
“첫 제자가 가장 기억에 오래 남을 거라는데...”그렇습니다, 저도 그렇거든요.앳된 얼굴이 그려지는 환한 얼굴 김 선생님을 생각합니다.귀여운 아이들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얼굴들이 기억될 것입니다.첫 직장에서 만난 동료 선생들과 직장 직원들도 잊지 못할 것입니다.좋은 일이든 힘들었던 일이든... (좋은 일만 이어지면 좋겠지만...)첫 출근!얼마나 마음이 설렜을까요?자신은 아직 어설픈 모습으로 아이들과 얼굴을 맞대는 첫 만남에.그렇게 3월을 맞았고 또 한 달을 지냈군요.그러면서 아이들과의 관계가 자석이 끌리듯 서로 붙들고 안아주고,아~,
“통~ 밥맛이 없어요. 먹고 싶지도 않고, 그냥 묵는 둥 마는 둥 해요.”코로나19 난리 통에, 못 만난 장인심 권사님(소록도 신성교회)의 전화 목소리가 힘이 없다. 팔순 고령이라 기력이 쇠했을 것이지만 어쩐지 짠한 생각에 마음이 시려온다.성탄절에 서울 광염교회(조현삼 목사)가 보낸 떡을 가지고 갔을 때, 두 손 붙잡고 “따뜻할 때 잡수셔요” 하고 싶었던 인사를 못한 것이 목에 걸려 있었다. 동리에 못 들어가서 교회 차에 옮겨 주었다.1952년 8월 어느 날, 장인심이 입원했던 때는 열여섯 살이었다. 열한 살 때 병을 얻으면서부터
손자를 보게 되면 엄마 아빠는 물론이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도 무척 기뻐한다.아내도 손주들을 떡애기 때부터 돌봐주었다. 어린 것들이 자라는 모습, 이쁜 짓 하나하나가 즐거움이었다. 뒤집고, 걷고, 말 배우고 자라며 성장하는 모습이 신기했으니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다는 얘기가 나온 것인가.큰 딸 자녀 셋, 작은 딸의 외아들, 아들은 둘을 낳았으니 내게는 손주가 여섯이다. 큰딸이 내가 사는 광주에서 교직에 있고 아빠가 의사로 일하고 있어서 지금도 초등학생인 막둥이를 돌봐준다.작은 딸과 아들은 캐나다로 이민했으니 그곳에 가서야 아이들을 만나
아내와 함께 전통 재래시장에 간다. 2, 4, 7, 9일에 연이어 장이 서는 말바우(광주광역시 북구) 시장이다. 광주에서 담양 쪽 도로가 열리는 곳이라서 담양, 순창, 순천, 화순, 구례, 곡성으로 길이 열리는 곳이다.일찍 오는 시외버스들이 촌에서 오는 보따리 손님들을 내려놓는다. 짐 보따리래야 밭에서 뽑은 싱싱한 채소나 과일 그리고 햇곡식이 대부분이다. 아는 얼굴들 만나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보따리 이야기들도 정겹다.시내버스에서 내리니 발 앞에서부터 물건을 풀어놓았다. 가을 장이라서 사람들이 더 많이 모인 것 같다. 금방 뽑은 무
소록도에 갈 때면 중앙리 병사病舍에 들려 김신아 장로를 찾아갔다. 부인이 중병을 앓아 병원에 입원해 있어서, 봉사자의 도움으로 생활했다. 우리 교회 여 성도들이 일 년에 몇 차례 김치를 담아다 교회에 나누어 드리는 길에 동행한 사람들이었다.그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그가 지은 노래를 함께 불렀다. ‘겟세마네 쓴 잔 내게 아파도 주와 잔을 함께하면 영광 또한 같으리니…’ 찬송하면서 모두가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렸다. 『찬미예수 1500.p.1320』차디찬 바위에 밤은 깊어가고겟세마네 쓴 잔 내게 아파도주와 잔을 함께하면 영광 또한 같으리